김영주 < 금융노련 부위원장 >

우리 사회가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법은 채용시 남녀차별 금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지급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될 당시 우리 사회의 근로현실은 이 법의
제정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때문에 "남녀고용평등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업장마다 기존의 제도를
고쳐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이해당사자인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후 일하는 여성들의 근로현실은 많이
향상되었다.

특히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그렇다.

새로 채용되는 여성근로자의 경우 임금에서 남성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되는 등 표면적으로는 남녀차별이 거의 없어지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인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신인사제도를 고안해 내고, 시간제 근로자의
채용비율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같다.

신인사제도란 직무 직급에 의한 직군분류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급여체계와
강화된 인사고과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승진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인사제도를
말한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신인사제도를 시행하려고 틈을 엿보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경영합리화및 인사관리제도의 개혁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는 남녀를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신인사제도가 그와 같은 의도를 가졌다는 것은 신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몇몇 금융기관을 보면 잘 드러난다.

은행에서 남녀직원이 맡는 업무는 신인사제도를 실시하기 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직군분류를 하면서 여직원이 남직원과 같은 직군을 선택하지 못하게
해놓았다.

같은 직군을 선택할 경우 여직원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숙직을 해야
하고, 연고지외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직원들은 어쩔수 없이 님직원과 다른 급여가 낮은 직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 신인사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한 시기가 1990년 이후이고 보면
신인사제도는 "남녀고용평등법"을 피해 교묘히 만들어 낸 새로운 형태의
남녀차별제도임이 분명하다.

한편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시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국제경쟁력 강화에 따른 기업비용의 절감과 인력난 해소이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이 또한 새로운 형태의 남녀차별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기관의 경우 시간제 근로자들은 말이 시간제 근로자이지 정규직원과
동일한 노동을 한다.

그러나 월급여는 정규직원의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채용 배치 해고 또한 경영자측 일방에 의해 행사된다.

한마디로 불완전 고용이다.

그런데 새로 채용되는 시간제 근로자의 대부분은 고교를 갓졸업한 20세미만
여성들이다.

물론 경영자측에서는 금융시장 개방과 업무의 전산화로 인해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일정기간만 한시적으로 이들을 채용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시간제 고용이 확산된 것은 여행원제도의 폐지로
여행원을 차별할 수 없게 된 뒤부터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주지 않으려고
이들을 편법채용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명시되어 있는 채용 및 임금에서의 차별이 직접적인
차별이라면 "남녀고용평등법" 실시이후 도입된 신인사제도나 시간제근로자의
채용은 간접적인 차별이 분명하다.

새로 형성되는 남녀차별의 방지를 위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등 하루
빨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