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인아, 나를 한번 꼭 안아줘"

보옥이 약간 울먹이는 소리로 습인에게 부탁을 하였다.

습인은 보옥이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을 알고 안쓰러운 나머지 보옥의
알몸을 마치 유모가 아기를 안듯이 안아주었다.

이전 같았으면 그렇게 알몸을 안아주는 습인을 보옥이 가만 두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숨소리만 좀 크게 내면서 습인의 품에 안긴 채 그대로
있었다.

습인은 아버지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의 사랑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보옥이 그 순간에는 불쌍한 동생처럼 여겨져 눈물이 또 핑
돌았다.

"이제 됐죠?"

습인이 보옥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묻자 보옥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젖을 한번만 먹게 해줘" 하고 보채듯이 말했다.

"꼭 아기 같아요.

나는 젖도 나오지 않는데"

습인이 비씩 웃으면서 가슴께를 풀어 큼직한 젖무덤을 하나 내어놓았다.

보옥은 그 허연 젖무덤을 눈이 부신듯 잠시 쳐다보다가 와락 입으로
물고는 빠는 시늉을 하였다.

습인은 쿡쿡, 웃기도 하다가 으음으음,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보옥이
젖을 빨도록 내맡겨두었다.

보옥이 한차례 젖을 빨고 휴우,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푹 주무세요.

자고 나면 훨씬 몸이 나을 거예요.

전 머리를 감아야겠어요"

습인이 저고리를 매무시하고 보옥에게 조심조심 속옷을 다시 입힌 후
이불을 덮어주고는 방을 나왔다.

보옥은 방금 자기를 안아주고 젖을 물린 습인이 어머니 같기도 하고
큰누나 같기도 하여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졸음이 슬슬 몰려오다가 얼마 후 잠으로 빠져들었다.

보옥이 한참 자고 있는데 금천아가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나타나
보옥을 흔들어 깨웠다.

"네가 웬일이야?"

보옥은 금천아가 죽었다는 사실도 잊고 그렇게 묻고 있었다.

"도련님, 나 혼자 죽기는 너무 억울해요.

염라대왕마저 내가 이승에서 큰 죄라도 짓고 온 양 꾸짖으면서 지옥으로
보내려고 해요.

그러니 도련님이 저랑 같이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를 변호해주셔야 해요"

"아, 난, 난"

그제야 보옥이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금천아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금천아가 습인보다 더 센 힘으로 보옥을 꼭 껴안고 대관원
밖 동네 우물께로 끌고 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천아와 함께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보옥은 비명을 질러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한 마디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