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권리와 기업경영에 대한 외부견제기능 강화, 계열기업간 지급
보증한도 축소 등 대기업정책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른바 "신대기업정책"이다.

재계는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고 정부는 나름대로의 입장을 설명하는 등
요즘 최대의 이슈로 부상돼 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대기업 정책이 느닷없이 나온 배경과 앞으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좌담회를 가졌다.

본지 정만호 경제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최종찬
재정경제원 경제정책국장과 이용환 전국경제인연합회이사, 이성순
성균관대교수, 신광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자리를 같이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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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최근 정부가 발표한 여신관리제도 개편, 공시강화및 소액주주보호
방안을 놓고 일부에선 "신대기업정책"이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적절한
표현입니까.

<>최국장=이번 정책이 꼭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시의무와 외부감사를 강화하는등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모든
공개기업에 해당되는 거죠.

이번 제도개선은 대기업에 한정된게 아니라 모든 기업의 전반적인 경영
풍토를 쇄신하는게 목적입니다.

<>사회=기업쪽에선 이번 조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이사=상당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책의 대상이 대기업으로 못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정책의 일반화라는 본질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특정집단을 어느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목적을 두고 정책을 시행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교수=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 이런 방향으로 갈수밖에 없는 상황
아닐까요.

지금까지 대기업정책의 초점이 경제력집중이나 소유분산에 중점에 있어
왔지만 별무효과였단 말씀이지요.

이제라도 지배구조를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잘한 일로 생각됩니다.

<>사회=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한 것도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부에선 현재 5%로 돼있는 소수주주의 권한행사요건을 1~2%로
낮추는건 너무 과하다는 지적도 있는 것같습니다만.

게다가 지금까지 대주주를 인수.합병(M&A)로부터 보호해 주던 대량주식
취득 제한등의 장치가 내년부터 풀리게 돼있는데 소액주주의 발언권까지
강화해 주면 재계가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최국장=현재 주주총회에서 소수주주가 행사할수 있는 권한은 임원해임
청구등 7~8가지정도 됩니다.

이들 모두를 일률적으로 정할수 없으나 지배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선
전체적으로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보단 훨씬 낮은 수준이지요.

일부에서 걱정하는 것은 총회꾼들이 이런 조항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마련할 생각입니다.

<>이이사=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데 "보호"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소액주주의 발언권강화"정도가 맞을 겁니다.

물론 기업경영은 민주적인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이런 조치는
원칙적으로 있어야겠지요.

다만 총회꾼에 대한 우려도 그렇고 M&A가 활성화되려는 시점에 소수주주권
까지 강화해 경영권방어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자칫 "경영"보다는 "경영권방어"에 신경을 쓰게될 수도 있어요.

<>신연구위원=소액주주권 강화조치의 배경은 지금까지 소수주주들이 기업
소유주의 전횡에 유효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행사요건이 몇%가 적당한가 보다는 독단적인 경영으로부터 지배
주주 이외의 다른 주주를 보호한다는데 의미를 둬야할 겁니다.

<>사회=기관투자가는 어떻게 됩니까.

0.5%나 1%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들도 많은데 이들도 소액주주로
보아 임원해임 청구나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가능한 건가요.

현재 기관투자가는 투자목적의 지분으로는 경영권 행사를 못하게 돼
있잖습니까.

혼동이 일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국장=소액주주권 보호와 인수합병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경영권 침해문제는 M&A제도를 보완함으로써 해결할 문제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투자를 목적으로 한 기관투자가라 하더라도 목소리 정도는
낼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교수=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구사할수 있는 정책수단은 아주 다양
합니다.

자본시장내에서 M&A를 통한 시장규율방식은 사실 비효율적 경영에 대한
강력한 외부규제장치입니다.

그러나 이게 실현되려면 상당시간이 걸립니다.

우선 정부가 M&A를 규제할 것이고 한국에서 정말 M%A가 활성화될 것이냐는
점도 불확실합니다.

효과도 의문시됩니다.

외국의 예를 봐도 소유구조가 집중된 독일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들은
"기업지배권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소유분산이 잘된 미국이나 영국에는 기업지배권시장이 형성돼 있지요.

따라서 소유가 집중된 한국은 M&A등 시장규율방식을 도입해 봐야 별효과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정부입장에선 경제력집중완화나 소유분산정책도 실효성이 없고
M&A등의 시장규율방식도 잘 통하지않는 만큼 현재의 틀에서 가장 손쉬운
내부통제장치를 마련하게 된게 아닌가 이해됩니다.

<>사회=그럼 이번엔 외부견제장치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지금 일부기업에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효과는 둘째치고 사외이사제 도입에 대한 정부 생각은 어떤 겁니까.

<>최국장=일부 외국에서 사외이사제 도입이 활발하고 국내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논의가 활발한 것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를 누가 임명하느냐입니다.

지금처럼 지배주주가 임명하느냐, 아니면 소액주주나 채권자가 뽑느냐에
따라 외부이사의 영향력도 달라진다고 봅니다.

정부로서는 이번에 발표한 투명성제고나 소액주주보호방안도 나름대로
충격이 없진 않을 것으로 보고 사외이사제를 의무화하는등의 추가적인
충격조치는 현재로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이사=현재 현대그룹에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우선은 사외
이사제라는 문화자체가 먼저 정착돼야 합니다.

한국의 기업경영 관습에 맞는지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구요.

그리고 사외이사제 채택여부는 기업자율에 맡겨야지 법이나 제도로 강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교수=사외이사제도가 정착된 곳으로는 미국와 영국 정도인데 이들
나라에서도 사외이사가 정보와 시간, 인센티브가 부족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지배주주 체제인 나라에서는 효과가 다소 의문시됩니다.

현재 일부기업이 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는 그룹PR측면으로 봐야할 겁니다.

<>신연구위원=동감입니다.

사외이사는 경영상의 유인요소가 없고 지배주주의 영향력에 별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회=이번 대기업정책은 지난해의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마련이 계기가
된게 아닌가 합니다.

검은 돈을 줘도 장부에 안나타나고 감사에서도 적발이 안되는등 문제점이
많이 노출됐거든요.

그런데 이번 조치에는 감사제도에 관한 부분이 좀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최국장=그렇지 않습니다.

감사선임때 지배주주의 의결권 제한지분에 특수관계인을 포함시켜 이들이
3%이상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외부 공인회계사 선임때에도 지금은 50%이상을 가진 사람이 대표이사일때
증권관리위원회가 외부감사를 지정했지만 이 기준을 더욱 강화시켰고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도 외부감사인을 지정받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계속 감사제도를 보강해 나갈 생각입니다.

<>사회=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으로 정부의 산업정책 자체가
전환기로에 서있는 마당에 재벌정책이니, 대기업정책이니 하는 것들이
꼭 있어야 하느냐는 불만이 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만.

<>최국장=기업들이 시장기능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경우엔 규제가
필요없겠지요.

그러나 실상은 대기업들이 특별한 이점을 향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선단식 경영에서 비롯된 내부거래 실태를 보세요.

그룹마다 건설회사를 두고있는데 이들 회사가 유지되는건 경영을 잘
해서라기 보다는 그룹이 밀어주기 때문이지요.

이런 것을 지금까지는 직접 규제해 왔는데 적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시요건을 강화해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준수토록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자금조달만 해도 그래요.

지금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한 터전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생각
하긴 어렵잖아요.

이처럼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데 경량급과 헤비급을 구분하지 말라는 건
무리한 주장입니다.

정부로선 불공정거래가 사라지면 불필요한 규제를 꾸준히 푼다는 생각
이지만 그에 앞서 투명성과 견제장치가 마련돼야지요.

무조건 규제를 풀수는 없는 겁니다.

<>신연구위원=현재 정부의 대기업정책의 핵심은 경제력집중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경제력 집중"이라는 개념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규제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외국엔 대기업정책이란 낱말조차 없어요.

소유분산이 안되고, 업종다변화의 정도가 지나치고,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게 "경제력집중"이라면 정부는 이를 막기위해 계속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의미있는 규제완화가 이뤄지려면 우선 "집중"이란 개념부터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거꾸로 업종다각화는 규제하면서 소유분산을 잘하고 경쟁력도 키우라는
주문이 가능한지를 정부는 생각해 봐야할 겁니다.

얼마나 상충되는 얘깁니까.

그래서 독점력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쓸데없는 규제는 풀어야 하는 거죠.

독점력 규제는 소비자에게도 이득이고 기업경영의 투명성도 높일수 있는
"일거양득책"입니다.

<>이이사=한국적 기업경영문화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지난 30년간 꾸준히 성장한 만큼 강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겁니다.

기업들은 지난 70년대부터 밖을 보고 달려 왔습니다.

이제 정부도 과거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사회=종합해보면 이번 조치는 "한국적 자본주의"나 "한국적 대기업정책"
을 마련하기 위한 첫단추 정도가 될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보완해야할 부분로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신연구위원=이젠 기업활동 자체나 규모, 사업영역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세계가 단일경제화돼가는 시점에서 이런 규제는 이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대기업정책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규제"를 벗어날수가 없게 돼있어요.

지금은 기본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역할과 관계등을 깊이 다시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또 불가피하게 규제를 할 경우엔 기업의 규모를 차별하지 말고 누구나
수긍할수 있는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반면 기업의 자유로운 사업기회를 보장하되 기업은 소액주주보호등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요.

흔히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기업주의 재산환원이나 복지
사업확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이란 주주와 소비자에 대한 책임,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과 같은 것을 총괄하는 개념입니다.

기업측에 피해를 본 소비자와 주주가 기업에 대해 정당한 요구를 할수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이사=이젠 "대기업정책=규제"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총액출자제한이니 상호지급보증제한이니 하는 제도가 아직도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입과 퇴출장벽을 없애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외국기업과의 경쟁때 선발투자를 제약하는 각종규제들을 과감히 풀어야할
때입니다.

또 기업의 투명성 제고 못지않게 정부정책의 투명성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여신관리제도만 해도 몇번이나 바뀌었습니까.

<>이교수=공시제도와 소액주주보호등의 투명성제고방안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불공정금융관행과 회계.세제상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일입니다.

또 연결재무제표 작성대상기업 확대와 접대비제도 개선, 대기업그룹에
대한 금융차등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대기업정책은 여신관리, 업종전문화, 공정거래정책을 3대축으로
해왔으나 업종전문화 시책등 시대에 맞지않는 것들은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

<정리=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