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아앗. 사람 살..."

보옥은 간신히 고함을 질러 금천아로부터 벗어나면서 두 눈을 떴다.

다행히 꿈이었다.

보옥이 안도의 한숨을 쉬다 말고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금천아가 또 침대 곁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리 놀라세요. 저, 대옥이에요"

"아유, 난 또"

보옥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무슨 악몽을 꾼 모양이죠? 괴로워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대옥이 눈물에 촉촉히 젖은 눈으로 염려스런 표정을 하고 보옥을 내려다
보았다.

"아, 아니야. 아버지에게 맞는 꿈을 좀 꾸었어. 걱정할 것 없어"

"소문을 들으니 가환 도련님이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여 보옥 오빠가
그리 심하게 맞게 되었다고 하던데요"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가환이 녀석은 내가 빨리 죽어주었으면 좋겠지.
하지만 뜻대로 안 될 걸. 언젠가는 내가 복수를 하고 말 거야"

보옥의 눈 밑에 경련이 일어났다.

"복수 같은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약은 어떻게 쓰고 있어요?"

"보채 누이가 특효약을 가지고 왔으니 곧 낫겠지 뭐. 술에 개어서 바르는
약이라나"

대옥은 보채가 보옥을 위해 약을 가지고 왔다는 말을 듣자 속으로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보채는 어머니도 있고 오빠도 있어 좋은 약들을 구해올 수 있었겠지만
대옥 자기는 그런 것을 구해올 데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병상에 누운 보옥 앞에서 보채에 대한 질투를 드러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보채 언니는 마음씨가 참 자상하고 고와요. 그 언니의 남편이 되는 사람은
행복할 거야"

대옥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며 보옥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 착한 누이야. 보채같은 누이가 내가 아픈 것을 염려해 주니 기분이
좋아져 금방 나을 것 같애"

대옥이 보니 보옥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질투심이 더욱 예리해져 칼처럼 대옥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울컥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데, 시녀가 들어와
희봉 마님이 오셨다고 아뢰었다.

"난 갈게요. 몸조리 잘 하세요"

대옥은 달아나듯이 뒷문으로 해서 빠져나갔다.

보옥은 대옥의 태도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자기가 보채를 칭찬하였기
때문에 대옥이 그러는 줄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