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부동산 거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동서통일을 호재로 생각하고 앞다투어 초대형 오피스
빌딩을 세웠으나 불티나게 임대될 것이라는 개발업자들의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새 건물의 썰렁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갖가지 임대마케팅 행사를 벌이고
있으나 워낙 많은 오피스빌딩이 동시 다발적으로 세워지는 바람에 추락하는
임대료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최악의 불경기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오피스빌딩의 요즘 평균 임대료는 평당 월
1백10달러선.

이 임대료는 최근 3년동안 절반수준으로 인하된 결과인데도 당분간 하락
추세가 멈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베를린 부동산중개인들의 얘기다.

베를린의 중심지역인 브란덴부르크 게이트 근처에 세워진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카르티에206"의 경우 현재 70%가 비어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유수 건축회사인 페이 콥&파트너스가 설계한 이 빌딩을 세우는데
모두 2억6천3백만달러가 투입됐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건물주는
누적되는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카르티에206 관계자는 인접 블록에 48억달러짜리 대형 오피스빌딩이 최근
들어선후 그나마 사무실을 보러오는 발길도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고 울상
이다.

건물주들은 베를린에서 자신들을 진탕에 빠지게 만든 주범은 독일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독일 통일이후의 정책을 돌이켜 보면 정부가 욕을 들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지난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이후의 이른바 "감격 시절"에 많은
정치인들이 한시바삐 베를린에 정부를 옮겨야 한다고 소리쳤다.

건설부서에서는 정부가 이사를 해오면 비지니스기능도 따라 올 수 밖에
없다는 전제아래 오피스빌딩의 필요성을 제기하기에 바빴다.

정부는 행동에 나서 세제혜택을 주는등 오피스빌딩 건설을 부추겼다.

건설비의 50%를 첫 사업연도에 비용으로 회계처리해주는 파격적인 초기
감가상각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부동산개발업자들을 베를린으로 집결시켰다.

절세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던 부동산개발펀드들이 베를린개발의 전주로
등장하면서 베를린은 일대 오피스빌딩 건설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타령을 하면서 이사를 자꾸 연기하자 사단이 난 것이다.

본에 있는 독일 행정부의 이사는 빨라야 오는 98년께부터 시작될
것이라는게 현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기에 베를린의 실업률이 14%를 웃도는등 경기자체가 불황국면에 놓이면서
부동산업계의 기온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한 부동산업자는 앞으로 연간 24만평규모의 새 오피스빌딩공간이 생겨나고
이중 절반 정도가 싸늘한 빈 공간으로 남겨될 것이라며 걱정이 태산이다.

베를린의 한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베를린은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개입해 실패한 표본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오는2000년이후에나 이 도시의
부동산거품이 걷힐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