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석 < 외교안보연 아태연구부장 >

최근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주변 상황이 너무나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정통우방인 미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을
향한 여러가지 움직임은 우리들의 중요한 관심사항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들 한국인은 이와같은 변화의 조짐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현명한 대응의 결과는 오늘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물론이요 후세의
한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과 북한간의 수교움직임은 우리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는
것같다.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관한 협상과 아울러 미국무부는 미북 한간의
연락사무소협상이 진전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조기교환 설치작업은 북한의
태도여하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한 북한의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의 미관리들과의 잇단 접촉,
북한노동당산하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의 방미등도 주목할만한 사향이요,
이들은 미국에 대해 경제제재의 대폭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주한미군이 평화유지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에는 미군의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전향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이는 북한의 경직된 기존노선에서 크게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방성은 북한경제난의 심각성으로 반년후가 한계라고 하는 지적을
하면서 북한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일본과 북한간의 관계도 급진전하고 있다.

한미양국이 한반도평화보장을 위한 관계국간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도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협상개최를 전제로 일조우호의원연맹의
재건에 나서는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일북간에는 이미 지난 3, 4월에 걸쳐서 두차례의
수교비밀접촉이 있었으며 북한의 김영남은 이 회동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들은 북경에서 수사관급접촉을 가졌으며 수교회담의 재개를 위해
적극적인 정부차원의 교섭을 진행시키고 있다.

사민당을 포함한 일본의 연립여당도 일북간의 교섭재개를 위하여 북한
노동당 김용순비서의 방일을 서두르고 있다.

뿐만아니라 일본의 거물급 재계인사를 비밀리에 평양에 파견,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앞둔 사전탐색작업을 펴기도 한다.

이와 때를 같이해 일본외무성산하의 국제문제연구소 간부일행들도 북한을
방문함과 동시에 북한외교부산하의 군축문제연구소 대표단도 곧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같은 미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과 북한간의 수교를 향한 일련의
움직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미관계와 한일관계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한미관계의 주요현안들은 정책적이고 문제지향적임에 반해 한일관계의
난제는 국민감정 지향적이고 한시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미일양국은 한국의 정통우방이기는 하나 미국은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에 결부되고 있으며, 일본은 경제.통상적인 측면
에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와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우방국으로서의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매우 커다란 국민적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첫째 향후 이루어지게 될 미.북한수교와 일.북한수교는 한반도를 위한
동북아질서의 재편성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계기로 한.미.일을 축으로 하는 3각구도와 북한.중국.
러시아를 축으로하는 또하나의 기존 3각구도에 근본적인 질서재편성이
불가피하게 된다.

말하자면 구냉전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미.북한및 일.북한간의 수교결과는 남북한 관계에도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교차승인의 개념이 현실화되는 상황속에서 남북한간의 역할구도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생길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때 한국외교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우리가 4대열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셋째 미.북한및 일.북한수교의 향방은 한국의 대외관계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틀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할수 밖에 없다.

양자간의 수교가 현실화 됐을 경우 북한은 이를 개방과 개혁을 위한
계기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갖는 위상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고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유도할수 있는 계기가 창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립과 심각한 경제난이 계속되면 동북아의 질서와 안정유지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인식속에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하겠다.

이와같은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보았을 경우, 남북한의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관계 열강과 일련의 회담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의 결과라고
하겠다.

미국과 일본이 새로운 안보선언을 통해 가일층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 역시 이에대한 적절한 강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주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미.일간의 차관보급 정책협의회는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일련의 당사국대화와 관련하여 대북정책의 균형을
취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아울러 북한을 대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유도할수 있는 방안도 모색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밝힌 바와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한과 관련국간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은 구한말시대의 대외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당시의 미국과 일본 그리고 청나라와 로시아는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한말 외교사가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국제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요 대응이다.

한국인의 슬기로움을 함께모아 거국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