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는 동남아 각국에 산재하면서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에 커다란 영향력
을 미치고 있다.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 화교들은 대부분 현지 국내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대신 사업에 전념하면서 역내의 주도적인 경제엘리트 세력으로 활동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최근 현지 국민들 사이에 화교사회및 화교자본에 대한 배척의식이 널리
확산, 화교 기업인들이 고민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말레이반도로 이주해온 중국인들의
후손이다.

말레이반도로 온 중국인들은 이주초기에 주석광산의 일용노동자로 일하면서
그들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말레이시아내에서 화교의 지위는 정부의 중국및 공산주의 위협에 대처하는
정책변화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아 왔다.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한때 당국으로부터 공산당 세력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아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후 말레이시아와 중국관계는 마하티르총리의 중국방문(85년)과
말레이시아인의 중국방문여행규제 해제(88년)등으로 점차 개선되었다.

현재는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완전히 회복돼 상호투자와 교역이 확대되고
이에따라 말레이시아 화교집단의 지위도 크게 향상되었다.

말레이시아 총인구의 약 29%가 중국계 후손이며 이들이 말레이시아내 상장
주식의 61%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교는 행정.경영부문의 전문인력중 60%를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화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중국어로 교육받았는지,
혹은 영어로 교육을 받았는지의 여부이다.

중국어로 교육받은 화교는 비교적 사업성공 속도가 늦었으나 최근 대중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 인구의 약 3.5%가 화교이다.

자카르타및 자바의 수라바야이나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군도의 모든 촌락과
도시에 화교들이 살고 있다.

특히 북부 수마트라 메단시의 150만명의 인구중 30%가 화교이다.

인도네시아 화교는 방언으로 따져 토톡과 페라나칸으로 양별된다.

토톡은 중국어를 구사하고 중국습관을 따른다.

또 인도네시아외의 화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페라나칸은 최소한 몇세대에 걸쳐 인도네시아에 살아왔으며 중국인
혈통이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여러요소를 상실한 화교이다.

이들중 많은 사람은 토착 인도네시아인들과 결혼했고 중국어를 구사할수
없다.

중국및 여타 화교사회들과의 지속적 유대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자국내에서 중국문화의 표현을 금기시하고 있다.

때문에 군부의 고위층이나 행정부에 화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화교는 신원증명서에도 기록되고 공직에 지원할때나 학교 또는 대학에
입학할때도 그들의 소속 인종을 나타내는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어 교육금지는 최근 완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싱가포르 = 화교는 싱가포르의 270만명 인구중 77%를 차지하고 있고
상장기업의 약 81%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화교중엔 복건성 출신이 40% 이상을, 광동성 출신이 40% 내외를
점하고 있다.

언어능력면에서 싱가포르 화교의 약 20%가 제 1언어로서 영어를 사용한다.

이들중엔 정치 관료 전문분야의 엘리트들이 많다.

이들외에도 65%가 영어를 적절히 구사하지만 만다린어나 기타 중국방언을
더 많이 사용한다.

나머지 15%는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거나 거의 못한다.

싱가포르 화교의 특징은 현대국가 건설에서 화교의 전통을 낡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

따라서 싱가포르 화교들은 영국인에 의해 남겨진 제도적 잔재위에 국가
건설을 시작했고 영국식 행정제도를 도입했다.

전통적인 중국식 제도를 서구식으로 대체하는 일련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태국 = 화교의 역사가 비교적 깊은 나라이다.

1660년에 이미 1만여명의 화교가 거주했고 1855년엔 화교수가 20만명으로,
현재는 방콕인구의 3분의2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태국남부지방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천연고무와 후추 주석부문을 장악했고
해안지역 거주의 화교들은 선원 무역 어부등으로 활약했다.

태국의 화교숫자는 수십년간 지속돼온 현지인과의 결혼등으로 인해 추정
하기 어렵다.

대략 총인구의 10%인 580만명 정도가 화교인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화교들은 현지동화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때문에 태국군의 고위직과 정치인중에는 화교 또는 화교계가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화교와 이종족간 혼인이 성행함에 따라 태국인과 화교사이에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이러한 현상은 방콕에서 심하다.

중국계에 대한 인종차원의 폭력은 거의 없다.

<>.필리핀 = 19세기까지 화교는 1만명 정도였으나 미국 통치하에선 10만명
으로 급증했고 1940년대엔 20만명에 달했다.

필리핀 화교의 90%는 복건성 출신이다.

필리핀내 화교집단은 경제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교들은 강력한 공동체와 친족협회를 갖고 도시지역에 집중돼 있다.

필리핀 화교는 그들에 대한 현지주민의 반감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회에 잘 융화하고 현지 풍습도 받아들이는 편이다.

필리핀 화교는 정치에 뛰어들지 않는다.

정치에 잘못 발을 들여놨다가 비화교계의 탄압을 받을 우려 때문이다.

선거에서 여러 후보를 동시에 지원할 정도이다.

<>.베트남 = 베트남 인구 7,200만명중 화교는 약 100만명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화교들은 남부, 특히 호치민시에 거주하고 1% 미만만이 북부에
살고 있다.

화교들은 호치민시 "촐롱"이라는 지역에 밀집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사업기반이 구축돼 있고 중심부에 병원과 학교
사업체들이 있다.

베트남정부는 화교들이 자치시설을 건립하는것을 허용하고 있다.

화교들은 대부분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화교들은 베트남내에서 금속으로 된 가정필수품외에 쌀유통업등을 장악하고
있다.

또 조선과 항운업 중개업 호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고무제품제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지역 = 아시아국가 미얀마와 브루나이 일본 인도등에는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100만명까지 살고 있다.

그동안 피혁제조나 음식점등을 경영해 오던 화교들은 기존 업종을 확대
시키거나 전업하는 추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