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은 좋지만 각론에는 문제있다"

전경련이 14일 회장단회의를 열어 정부의 신대기업정책에 대해 입장표명한
내용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총수들은 이날 회의에서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정부정책에는 원칙적으로
수용하겠지만 정책수단들 가운데는 선진국에는 없는 각종 제도들이 많아
기업의 경영활동등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대기업정책에는 세계화 국제화 개방화에 역행하는 독소조항들이
상당수 있어 무한경쟁시대에 국내외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의
뒷다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회장단이 우려한 것은 신대기업정책이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우리경제 최대의 과제인 경기연착륙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심상치 않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난 4월 한달만해도 20억달러를 기록하는등 눈두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다 <>중소기업들의 경영난 가중 <>철강등 소재산업의 재고누증
등으로 경기연착륙이 우려되고 있는 따른 것이다.

신대기업정책이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지면
우리경제에 일파만파의 후유증을 가져온다는게 회장단의 일치된 견해다.

타이밍이 좋지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굳이 이를 서두러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회장단의 이번 발표내용은 재경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신대기업정책에 대해 개별그룹차원이나 주요그룹기조실 실무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총수들이 최종적으로 집약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무게를 띄고 있다.

회장단은 이날 회의에서 신대기업 정책의 핵심인 <>상호채무보증의 단계적
철폐 <>기업공시제도 강화 <>소액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계열사간 내부거래
금지 <>출자총액한도 축소문제등을 집중 거론했다.

이중 회장단이 가장 우려한 것은 상호채무보증 철폐, 출자총액제한을 비롯
여신규제 존속문제.

재계는 이들 제도들은 기업경쟁력강화에 걸림돌이 될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입법과 정책수행과정에서는 재계입장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상호채무보증 철폐의 경우 담보위주의 금융관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금융비용의 추가부담을 초래,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

현명관 삼성 비서실장이 "상호채무보증은 엄연한 금융관행으로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당장의 적자를 무릅쓰고 전략사업에 뛰어드는데 큰 장애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재계는 출자총액제한(현행 25%)도 기업성장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으므로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권한행사 요건을 완화한 것에 대해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게
재계의 일치된 견해다.

김태일 전경련이사는"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들의 권한은 강화될지
몰라도 외국의 거대기업이나 경쟁기업이 주식을 취득해서 원가나 기업비밀을
들여다 볼수 있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총수들은 2세에게 재산상속외에 경영권을 대물림할 경우 할증상속제를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표시했다.

이는 오너경영의 장점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은 이날 회장단의 논의내용을 정부정책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정부와
상시대화 채널을 가동키로 했다.

경영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대기업개혁에 나서고 있는 정부와 이의 문제점을
우려하는 재계가 어떤 입장을 조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의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