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승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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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이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있게
하는 것을 배웠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 말을 실증해 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진화론을 증명한 찰스 다윈에게서는 그 대표적인 실례를 찾을수 있다.
다윈이 종의 변천 진화를 연구 발견하게 된 것은 영국해군의 측량선인
비글호에 승선한 때부터였다.
미지의 자연에 몸소 접촉하고 또 그것을 관찰하면서 사색을 깊이 한 것이
그 원동력이었으나 그 힘은 그의 스승인 헨슬로의 영향이 바탕을 이루었다.
다윈의 케임브리지대학 시절의 은사인 헨슬로는 식물학 곤충학 화학
지질학 등 많은 학문 분야에 박학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인격자였다.
헨슬로야 말로 학문과 인격을 고루 갖춘 참된 교육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윈은 그러한 헨슬로를 몹시 존경하면서 따랐기 때문에 "헨스로와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다윈은 비글호에 탔을 땐 이미 자연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뒷날 다윈은 "내가 세상에서 성공을 했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오로지
헨슬로 선생의 덕택"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다윈이 그처럼 넓고 깊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을 함께 지닌 헨슬로 선생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소질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후세에 여러 학문분야에 넓게 커다란 영향을 준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겨 놓지 못했었을런지도 모른다.
동양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공자도 일찌기 교육의 목표를 학문 덕행 충실
신의를 기본요건으로 한 인격의 완성에 두었다.
그것은 곧 스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했다.
스승은 우선 학문이 성숙해 있어야 하고 덕행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며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동서양 모두가 학문과 인격을 두루 갖춘 전인격체로서의
스승을 이상형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스승을 지식이나 기능을 전수해 주는 도구로 경시
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도 남는다.
스승의 날을 맞을 때마다 발표되는 교사들의 의식조사결과에서 그 단면을
읽게 된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심기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스승의 제자리를 찾아 주는 사회운동이라도 펼쳐야 될 것 같다.
스승의 날을 맞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겉치레 스승예찬론은 지양해야 할
단계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
하는 것을 배웠다"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 말을 실증해 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진화론을 증명한 찰스 다윈에게서는 그 대표적인 실례를 찾을수 있다.
다윈이 종의 변천 진화를 연구 발견하게 된 것은 영국해군의 측량선인
비글호에 승선한 때부터였다.
미지의 자연에 몸소 접촉하고 또 그것을 관찰하면서 사색을 깊이 한 것이
그 원동력이었으나 그 힘은 그의 스승인 헨슬로의 영향이 바탕을 이루었다.
다윈의 케임브리지대학 시절의 은사인 헨슬로는 식물학 곤충학 화학
지질학 등 많은 학문 분야에 박학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인격자였다.
헨슬로야 말로 학문과 인격을 고루 갖춘 참된 교육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윈은 그러한 헨슬로를 몹시 존경하면서 따랐기 때문에 "헨스로와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다윈은 비글호에 탔을 땐 이미 자연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뒷날 다윈은 "내가 세상에서 성공을 했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오로지
헨슬로 선생의 덕택"이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다윈이 그처럼 넓고 깊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을 함께 지닌 헨슬로 선생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소질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후세에 여러 학문분야에 넓게 커다란 영향을 준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겨 놓지 못했었을런지도 모른다.
동양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공자도 일찌기 교육의 목표를 학문 덕행 충실
신의를 기본요건으로 한 인격의 완성에 두었다.
그것은 곧 스승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했다.
스승은 우선 학문이 성숙해 있어야 하고 덕행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며
성실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동서양 모두가 학문과 인격을 두루 갖춘 전인격체로서의
스승을 이상형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스승을 지식이나 기능을 전수해 주는 도구로 경시
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도 남는다.
스승의 날을 맞을 때마다 발표되는 교사들의 의식조사결과에서 그 단면을
읽게 된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자신의 직업과 사회적 심기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스승의 제자리를 찾아 주는 사회운동이라도 펼쳐야 될 것 같다.
스승의 날을 맞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겉치레 스승예찬론은 지양해야 할
단계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