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 제주제의가 나온지 4주가 되는 14일 역시 그곳에서 회담수락을
촉구하는 한-미-일 고위협의회의 공동발표가 나왔다.

전쟁당사국인 남북한과 미-중이 한반도 평화문제를 토의 결정하자는
한미정상의 공동제의에도 불구, 기대되던 북한의 반응이 계속 지연되는
상황이어서 촉구후의 상황변화가 일층 주목된다.

4자회담 자체가 43년간에 걸친 불안한 휴전상태의 평화체제 전환을
과제로 삼는만큼 북한이 심사숙고후에 제의를 수락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준비없이 대좌만 서두르는 일이 궁극으로 평화정착-통일여건 조성을 향해
회담을 이끄는데 반드시 득이 된다고만 보긴 힘든 것이다.

다행한 것은 제의가 있은후 북한측이 거부반응부터 보이던 여느 경우와는
달리 핵심인물 파견등 주로 미측의 진의를 타진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온
점이다.

그 사전타진에 한국측을 여전히 피한듯한 인상은 저들이 쉽게 벗지 못하는
자승자박의 한계라 볼수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 몇차례 미국내 모임에서 북한인들이 보인 개방지향적
제스처에는 과거와 다른 유연성이 엿보였다.

또 추측컨대 그런 체미 일정중 북한인들이 체득할수 있었던 것은 대미접근
에서의 한국측 완전배제가 생각보다 용이하지 않다는 판단이라고도 보인다.

북측의 그런 판단은 미국인들과의 개별 접촉과정에서 미-북 접근에 있어선
남북 직접대화 병행이 불가피하다는 제주 정상회담의 다짐을 실감한
탓인지도 모른다.

이번 한-미-일 제주협의가 갖는 진정한 의의야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을 포함한 4자회담 수락의 불가피성을 재확인시키는 데서 찾을수 있다.

북한은 내부 강온대립에 따른 속도상 이견은 있을뿐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원칙과 그 바람직한 상대가 미-일이라는 점에 총의가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 강온을 불문하고 가장 꺼리는 대상이 있으니 다름아닌
한국이다.

피나는 반세기의 체제경쟁 끝에 남쪽의 판정승을 인정하기는 죽음보다
싫거니와 그것을 내외에 공인하는 자체가 붕괴라고 두려워하는 북한
지배층의 심중을 우리는 꿰뚫어 보고 이해함으로써만 대화의 말문은 열릴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때 한국의 대중-러 수교가 이미 완성된 마당에 북한의 수교
희망국은 미국 일본으로서 그들의 역할은 중요할수 밖에 없다.

만일 미-일이 대북한 접근을 한국의 중-러 수교와의 교차라는 단순논리로
대한다면 한반도에 1세기동안 지고있던 역사적 부채의 상환이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는 과오다.

북한정권이 상식의 범위를 일탈하지만 않는다면 주변 4강의 남북한 교차
승인은 역사의 순리다.

그러나 특성이 세계에 공인된 마당에 이를 외면하고 북한의 위기탈출-국력
신장을 돕는 방향으로 갈때 한반도내의 무력충돌 가능성 증대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미국 일본이 1세기전 함께 한반도에 범한 과오를 보상하려면 제주선언은
말로만 아니라 진실을 담아야 한다.

남북대화 재개로 순탄한 교차승인 단계가 열리도록 칙임지고 일조해야
옳다.

이틀에 걸친 제주도의 3국회의는 그런 점에서 그 의지가 관철되도록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