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컴팩트 디스크)롬 드라이브 노트북PC 반도체 등 첨단 전자제품의
국내 유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등 전자제품 유통시장에서 일부 제품의 거래가격이
한 달사이에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또 노트북 PC등은 정상적인 시장구조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가격으로
일부 제품이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장도 가격의 절반 값에 제품을 살 수 있는" 기형적인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

"공급가격 따로 거래가격 따로"의 대표적 예는 지난달초 전자상가에
공급되기 시작한 8배속 CD롬 드라이브가 대표적 예다.

이 제품은 현재 메이커의 공급가격(22만원)에 반도 못미치는 개당
1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시중에서 4백만원을 홋가하는 펜티엄급 노트북 PC도 2백50만원에서
3백만원 사이에 비정상적인 통로로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시장을 교란하는 요인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꼽힌다.

역수입 사재기 등 "한 건"을 노린 중간상인들의 장난과 여기에 편승한
일부 소비자들의 음성거래가 그 주범이다.

8배속 CD롬 드라이브는 중간상인들의 개입으로 가격 형성이 왜곡된
대표적인 예다.

"한 탕"을 노린 중간상인들의 "잘못된 계산"이 한 몫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CD롬 드라이브는 PC의 기억및 재생기기로 기존 플로피 디스크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다.

최초 상품인 2배속 제품은 2년전 시장에 나오자 마자 대히트를 쳤다.

각 PC업체들이 잇달아 이 제품을 컴퓨터의 기본 주변기기로 채용하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CD롬 드라이브의 열기는 2배속에 뒤이어 나온 4배속 제품에도 그대로
이어졌었다.

4배속 제품은 웃돈을 주고도 살 수없을 만큼 품귀를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올들어 8배속 제품이 출시되자 마찬가지로 품귀를 빚을 것으로 예상한
중간상인들이 대량 매집에 나선 것.

이들은 한국 메이커들이 국내시장 공급에 앞서 제품을 실어낸
해외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했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사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국내 메이커가 수출한 물건을 유통업자들이 역수입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잘못된 계산이었다.

8배속 제품이 워낙 고가여서 PC메이커가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지
많은 것이다.

따라서 수요가 발생하지 않고 가격은 당연히 하향곡선을 그었다.

품귀에 따른 가격급등을 노리던 중간상들로서는 낭패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수요가 없자 역수입했던 제품을 재빨리 풀었다.

재고를 없애려는 의도였다.

매기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늘어난 물량은 불에 부어진 기름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제품이 나온 지 한달만에 값을 절반으로 내려앉은 것.

CD롬 값의 폭락이라는 불똥은 삼성전자 LG전자등 CD롬 메이커에도 튀었다.

시중 유통가격과 공장의 공급가격이 워낙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커들은 공급가격을 30%정도 내리는 동시에 국내 공급물량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비정상적으로 형성된 가격을 바로 잡기위한 고육지책이다.

사재기와 역수입으로 "한 건"을 올리려는 사람들은 흔히 나까마라고
불리는 중간상인들이다.

이들의 자금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큰 손들의 경우 한 번에 돌리는 돈의 규모는 최소 수십억 단위"(S컴퓨터
관계자)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유통시장의 질서를 흐리는 것은 중간상인들의 장난만이 아니다.

일부 소비자들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최근 용산전자상가등에 흘러들어온 "대학가 노트북PC"가 좋은 예다.

"대학가 노트북PC"란 삼성전자 등이 최근 국내 일부 대학에 펜티엄급
노트북PC를 파격적인 값으로 공급한 제품이다.

각 메이커가 산학협동의 차원에서 대학 당국의 요청을 받아 들여
시중가인 4백만원대보다 절반 정도 낮은 값에 학생들에게 팔았다.

그런데 이 제품들이 유통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

워낙 값이 싸다 보니까 학생들이 전자상가에 10~20만원 정도 얹어서 되
파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판매한 제품에는 시중에서 유통할 수 없다는 표시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삼성전자 관계자).

유통시장에 이렇게 흘러들어온 제품은 대학생들이 구입한 총 물량의
10%선인 2천~3천대 정도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질서가 무너진 것 당연한 일이다.

물론 역수입등은 정당한 비즈니스의 한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일반화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 유통시장의 허약한 체질이다.

"큰 손" 몇명 때문에 가격체제가 무너지고 음성거래가 성행하는
상황에서는 속속 국내시장에 상륙하고 있는 해외유통업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절박한 지적이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