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의 사무실과는 가장 가까운 코스로 편도 40km, 하루 출퇴근 거리가
물경 200리나 되다보니 지난 87년 내가 우리청(당시 공업진흥청)에 처음
왔을때만 해도 많은 분들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왜 그 먼데서 다니며 고생
하느냐고 묻곤 하였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한마디 "그곳이 용인이기 때문입니다"였다.
사실 나는 용인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얻어서까지 그곳을
떠난적이 없는 토박이 "용인놈"이다.
우리 용인은 풍수지리에 의하던 명당이 많아 예로부터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일 뿐더러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수도권에서 가장 개발이 빠른
지역, 가장 각광받는 전원 도시로서 지금은 "살아도 용인, 죽어도 용인"
이란 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곳이다.
용심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인에서 사랑하는
부모형제,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며 용인사람의 애향심을 공유하고
있는 용인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제 44회 동창(1963년 2월
졸업)들의 모임이다.
우리 모임의 회원들은 대부분 6.25전쟁의 와중에서 태어나 갖은 풍상을
다겪고 이제 40대 중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일상속의 평범한 사람들
이다.
맛자랑 용인의 대명사 "내천갈비"사장인 회장 이용규, 모범택시 기사로
시민의 발노릇을 톡톡히 하는 부회장 강석근, (주)한국 기프코 용인점
대표인 총무 남기철을 비롯하여 입심 좋기로 유명한 경시 제9지구 직장
의료보험조합 부장인 황대 등 26명이 회원으로 있는 우리 용심회는 지금
부터 20여년전인 1976년에 만들어졌다.
친구간의 우애를 다지고 언제나 희노애락을 같이 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모임이 되자는 약속으로 출발한 용심회는 이제 용심부인회로
까지 이어져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으로 발전하였다.
매월 어김없이 남편, 부인이 별도로 모임을 갖고 두달에 한번은 부부가
함께 만나 자녀교육 문제로부터 자질구레한 가사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얘기로 꽃을 피우는가 하면 봄 가을로 모교교정에서 동문 체육대회에
참여하여 동문과의 유대를 다지기도 한다.
물론 1년에 1-2회정도 갖는 용심가족 야유회는 찌든 생활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매우 유익한 기회가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