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명이 발달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편지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떼어놓을수 없는 존재였다.

정보의 전달자, 산업과 상업의 매개자, 또 사람 사이의 친교나 국가간의
평화의 추진자로서 역할을 해 온게 편지였으니 말이다.

특히 사람 사이에 오가는 자필 편지는 가족이나 친척,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정과 뜻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큰 몫을 해 왔다.

편지란 원래 대화나 분위기로만 맺어진 가족마다 이성간의 사랑 또는
우정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 또 그것들을 더욱 성숙 심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그대로 드러내 줄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엄청난 양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긴 문장의 편지를 쓴 사람은 영국의 켄트주에 사는 앨련
뉴반이었다.

1982년1월3일에 쓰기 시작하여 84년1월25일에 그의 부인 자넬에게 발송한
것으로 무려 140만2,344단어로 이루어진 편지였다.

편지 통수로 보면 일본의 재무차관과 건설장관을 지낸 비치 노라가
단연기록적이다.

1971년9월부터 그의 부인인 미츄가 죽은 85년3월까지 1,307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편지쓰기에 남다른 정열을 쏟은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편지의
형식을 갖춘 것이라고는 볼수 없는 단 한글자로 된 서신을 보낸 괴짜들도
있다.

1862년 프랑스의 문호인 빅토르 위고와 출판업자인 허스트 사이에 오간
편지는 상식을 뛰어 넘는다.

위고가 그의 소설 "레 미레라브"의 판매현황을 알고 싶어 "?"만을 쓴
서신을 보냈더니 허스트 또한 " "만을 쓴 답신을 해 왔던 것이다.

이들 화사가들이나 괴짜들의 일화야 어떻든 요즘 사람들은 자필 편지
쓰기를 싫어, 일반화되어 있다.

전화 타자기 팩시밀리 전자우편 컴퓨터통신등 신속과 편리를 무기로
한 과학문명이 편지를 밀어 내 버린 것이다.

프랑스 체신부가 해마다 즐어가는 사신을 쓰는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으로
5월11일을 "편지의 날"로 정하고 편지쓰기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그것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과학문명에 밀려나고 있는
인간 본성의 회복운동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비난 프랑스에만 국한된 문화현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의 의미를 음미해 보아야 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