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처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마련중인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주요 내용이 지난 16일 공청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현재 국가 총 연구 개발투자의 16%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정부부문의
과학기술투자비중을 25%이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2001년까지 정부의
연구개발투자예산을 정부 총예산의 5%에 이르도록 연차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연구개발과 관련된 문제들은 법을 하나 더 만든다고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정부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만든 과학기술관계법령이 200개를 넘고
각종 기금과 위원회등이 수십개나 난립하고 있는 현실만 봐도 금방 알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이번 특별법 제정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같은 현실을 묵과할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과옥조같은 특별법의 내용이 아니라 200여개의
법령도 모자라 특별법까지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과학기술행정체계의
낙후성과 연구소운영의 비효율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과기처가 공개한 특별법의 핵심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돈과 관련된 것이고 이는 예산을 다루는 재정경제원의 적극적 협조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지난 10년동안 과기처가 특별법제정을 주장할 때마다 예산당국과 마찰을
빚었던 것도 문제는 돈 때문이었다.

이번 특별법제정을 둘러싼 부처간 협의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특히 재경원은 내년부터 5년간 연구개발예산의 증액을 특별법에 명문화
하겠다는 과기처의 주장에 큰 부담을 느낄수 있다.

여기에 정부출연연구소의 운영방향을 둘러싸고 재경원과 과기처의 시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또한 연구개발지원을 둘러싸고 번번히 마찰을 빚어온 통상산업부와
과기처간에도 특별법에 따라 새로 설립될 기구의 소관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소지도 크다.

과학기술진흥은 어느 한 부처가 나선다고 될일이 아님은 우리나라
정부연구개발관련 예산의 부처별 배정내역을 살펴보면 쉽게 알수 있다.

올해 정부연구개발 관련예산 2조3,795억원중 과기처가 집행하는 예산은
33%인 7,800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통산부 국방부 교육부등
다른 부처가 사용하도록 돼있다.

이는 예산을 증액해도 부처 이기주의가 극성스런 우리의 현실로 보아
잘못하면 부처별 중복투자가 돼 투자효율성이 떨어질 위험이 크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특별법제정에 앞서 각 부처의 유기적 협력 조정체제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특별법제정에 앞서 정부가 해야할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를 조기 정착시키는 일이다.

연구소의 자기혁신 없이 특별법에 따라 지원만 늘린다고 과학기술이
진흥될수는 없다.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경쟁체제의 도입이 필수적이며
민간부문과 중복되는 연구는 과감히 민간연구소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