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은만큼 국회의원 개인차원에서의
의정활동보다는 대변인 직무에 충실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총선직전 전격적으로 국민회의에 합류, 전북 전주덕진구에서 전국최다
득표를 기록하면서 정치권에 화려하게 데뷔한 정동영대변인(43)은 17일
"정치무대에서 기자라는 "구경꾼"과 국회의원이라는 "배우"사이에는
큰차이가 있는것 같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대변인은 "김대중 총재로부터 매일 개인수업을 받다시피하지만 아직
10%정도밖에 적응하지 못한것같다"면서 "앞으로 비난일변도의 성명을
내는 관행에서는 벗어나고 싶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정대변인은 "기자시절 의원들의 의정활동 내용에 비판적이었기때문에
국회에 들어선만큼 개인적으로 공부도 더하고해서 잘하고싶었는데 사정이
그렇지못해 아쉬움도 없지않다"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외무통일위를
1지망 상임위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전북 순창출신으로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정대변인은 지난78년 MBC에
입사, 정치부 사회부 LA특파원등을 거쳐 간판뉴스프로인 "O시뉴스"와
"주말뉴스데스크"진행을 맡아왔던 명앵커 출신.

정대변인은 국민회의에 입당하게된 배경에 대해 "문리대동기이자
학생운동맴버 모임인 "마당"의 20년 단골맴버였던 이해찬 정책위의장으로
부터 여러차례 권유를 받았다"면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져야한다는
생각에서 입당을 결심하게됐다"고 소개했다.

정대변인은 총선에서의 압승에 대해 "지명도가 도움이 됐지만 2-3일
간격으로 급수가 될만큼 물사정이 나쁜데도 일제때부터 계획돼있던
댐공사가 예산지원 미흡으로 지지부진한 열악한 지역사정을 들어
정권교체를 강조했던것이 어필한 것같다"고 분석했다.

정대변인은 맞상대인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에 대해서는 "반장과 졸병
신분으로 민정당을 같이 출입했던 사이"라며 "당시 김선배는 "김당수"라는
별명으로 후배기자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고 말해 대결보다는 경쟁관계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 문희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