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내부의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중대사고가 발생해도 피해범위는
원자로내에 한정된다는 원리가 세계 처음으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응용연구그룹 위해도및 신뢰도팀의 서균열박사는 최근
"원자로내의 냉각수가 떨어지거나 출력이 갑자기 높아져 핵연료 노심이
녹아내리더라도 용융된 핵연료는 원자로와 외부 차폐벽을 뚫고 나가지
못한다"며 "지난 2년간의 소규모 실증실험 결과 그 원리를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는 원전 중대사고시 핵연료 용융물이 원자로 외부로 유출돼 피해범위를
확산시킬 것이란 통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원자로 노심용융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79년 미국의 드리마일
(TMI-II원자로)원전사고.

미국 동부지역 원전에서 노심용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섭씨2천5백도~3천도의 용융물이 차폐벽과 지표를 뚫고 지구 반대편인
중국으로 분출, 피해를 확산시킬 것이란 내용의 영화 "차이나 신드롬"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여론의 들끓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드리마일 원전사고 때의 20t에 가까운 노심용융물은 원자로
외벽을 뚫고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를 단지 "행운"이라고 생각해왔다.

지난 93년 처음으로 덮어두었던 사고현장을 열어 확인한 결과 사고발생후
단 30분만에 용융물이 원자로 내부에서 응고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도
그같은 생각은 변하지않았다.

서박사는 그러나 원자로용기와 핵연료물질의 물성차이로 인해
노심용융사고시 원자로 용기는 팽창되고 용융물은 수축되는 현상에
착안했다.

즉 용융물과 원자로용기 표면 사이에 1mm정도의 간격이 생기며 이 틈새로
냉각수가 급격히스며들어 용융물을 냉각킨다는 이론을 제시한 것.

물론 틈새의 냉각수는 순식간에 증발되지만 진공은 메워져야 한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냉각수는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것이다.

서박사는 이 원리를 응용,2002년까지 대형 핵연료 실증실험을 통해 원전
중대사고를 방어할수 있는 설계기술확립을 내용으로하는 "소나타-4"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간공동연구프로젝트로
확대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서박사는 "이 프로젝트가 완성될 경우 원전중대사고를 1백만분의1
수준까지 줄일수 있으며 별도의 원전 안전성 심층방어조치가 필요하지
않아 발전단가를 절반정도 낮출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