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으로 유명한 나라 영국.

그중에서도 더욱 보수적인데가 영국의 금융가다.

그런 영국금융가에 요즘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콜뱅크라는 은행이 혁신의 진원지다.

이 은행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다.

하위직의 70%,중위직 50%,상위직 25%를 여자가 차지하고 있다.

성차별주의가 팽배한 런던 은행가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수치다.

콜뱅크가 이처럼 여자를 많이 채용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콜뱅크는 영국에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화은행"( telephone
banking )중 하나다.

전화은행은 전화한통으로 예금 대출 연금정산 배달 주택구매등의
토털서비스를 제공한다.

전화은행이 일반은행과 경쟁하려면 아무때나 전화로 은행원과 접촉이
돼야한다.

그래서 하루24시간 연중무휴로 인력을 배치해 고객서비스를 할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다.

이러다보니 여성을 많이 쓸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유연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죠.

편리한 시간에 와서 일하고 돌아갈수 있는 파트타임근무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여성근로자를 선호할수밖에 없었지요"

런던 시립대학교의 안젤라 코일박사는 이처럼 새로운 기업형태가 여성을
일터로 불러내는 요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필요에 의해 여성고용 특히 파트타임근무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유럽의 일반적 추세이지만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여성의 고용을
확충하려는게 유럽대륙 여러나라의 공통된 특징이다.

유럽대륙국가들은 민간기업들이 여성고용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돌파구를 공공부문에서 찾았다.

여성고용할당제나 여성고용촉진대책은 대부분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공부문에 우선 적용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여러국가에서 "공공부문-여성우위,
민간부문-남성우위"의 형태가 일반적인게 이래서다.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거의 없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민간기업쪽에 여성이 더많이 진출하고 있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유럽대륙국가들과 영미권은 전통의 차이로 구체적 정부정책에서도 차이가
난다.

"대륙계통의 나라는 공공부문의 여성고용확대 여성고용할당제 유아원및
육아휴직제도정비등 여성의 참여를 촉진시키는데 정부가 앞장을 섭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전통적인 노동시장방임정책에 따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시정권고기구설치 소송 지원등 여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간접적
방법에 의존합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정식직원중 유일한 한국인인 남영숙박사는 유럽대륙과
영미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같은 유럽국가(영국제외)중 여성 취업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여성들이 지위를 확보하는 방식이 다 같지는 않다.

스웨덴의 제도가 가장 완벽하다고 하면 프랑스는 주로 육아 휴직제도에
치중하고 독일은 직장내에서의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이중 독일의 경우 여성의 사회생활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잘 돼있어 여성노동자에 대한 대우도 좋다.

"독일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그들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이라는 국제노동기구의 우어줄라 쿨케씨의 말은
매우 함축적이다.

유럽연합은 이런 국가별 여성고용조건을 통일하려고 하고있다.

"유럽연합이 유럽국가간 여성고용조건을 통일시키려고 하는 것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로마조약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만 여성이 우대받는다면 여성들이 그쪽으로 몰려가 지역별
성비의 균형이 깨지는 위험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한 EU대표부의 투에 로스테드대사는 유럽전체가 하나가돼 여성고용을
함께 증진시키려고 공동노력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연합이 여성고용조건을 통일시킬 경우 그 통일된 기준이 여성천국인
스웨덴에 가까워질지, 아니면 여성고용할당제를 도입하면서까지 보수적
사회분위기에 도전하는 독일식이 될지 우리로서도 관심이 아닐수 없다.

수치상이긴 하지만 "완전고용"인 만큼 잉여인력이 없어 어차피 여성을
끌어내야 하기에 유럽의 통일된 "여성취업보호기준"은 우리의 모델이
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 제네바 = 안상욱 기자/김흥종 LG경제연 선임연구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