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의 21세기 방정식이 "초일류기업=글로벌경영"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국경의 개념이 점차 희박해지고 이에따라 메가 컴피티션
(대경쟁)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글로벌경영의 요지는 한마디로 "한정된 경영자원을
범세계적으로 최적배분하여 각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맞는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
따라서 생산활동은 물론이고 판매 물류 심지어 연구개발까지도 해외거점
확보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동기와 취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내기업들의 해외진출은 투자잔액
기준으로 작년말 현재 102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지난 68년 국내기업중 최초로 한국남방개발이 인도네시아 삼림개발에
300만달러를 투자한지 27년만에 1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90년대들어 이뤄진 투자다.
해외투자 역사가 27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본격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92년부터는 해외투자금액이 외국인의 국내투자 규모를 웃도는 자본의
역류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건당 투자규모도 급격히 대형화되고 있다.
지난 94년만해도 180만달러이던 것이 작년에는 310만달러로 불어났다.
특히 대그룹의 투자규모는 이미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각각 13억달러씩 투자해 미국에 짓기로 한 반도체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LG그룹은 2000년까지 동남아 지역에만도 5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
이다.
이미 해외인력규모가 10만명을 넘어선 대우그룹도 2000년까지 25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전세계에 1,000개의 경영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이쯤되면 가히 "코리안 머니의 대이동"이라 할만하다.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전략은 단순히 양적인 확장에만 그치는게 아니다.
우선 투자의 내용상 종래의 신규진출에서 설비확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해외투자가 진출기반 마련이었다면 이제는 기반 다지기로
넘어간 셈이다.
그런 변화가 가장 뚜렷한 업종이 전자업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장에 연산 20만대 규모의
TVTR공장을 증설했다.
LG전자도 인도네시아의 복합생산기지에 대해 올해부터 2000년까지 증설에
나선다.
대우전자는 이미 작년말 영국 VTR공장의 생산능력을 연산 10만대에서
100만대로 늘린데 이어 연내에 프랑스 컬러TV공장의 생산규모를 60만대에서
80만대로, 폴란드 컬러TV공장은 40만대에서 60만대로 늘릴 예정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기반 마련에 실패해 철수하는 경우다.
80년대 후반 미국에 진출했던 삼성전자의 뉴저지TV공장과 LG전자의 헌츠빌
TV공장, 현대자동차의 캐나다 퀘벡공장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또한 "전략적 철수"라는 점에서 보면 글로벌 경영이 그만큼
성숙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본기업들의 경우도 올 1.4분기중 600여개 업체가 동남아에 신규 진출한
반면 400여개 업체가 철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전략에서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양상은 "해외
본사제도"의 본격화다.
작년 1월1일 삼성그룹이 미국 동남아 유럽 중국 등 5개 지역에 해외본사
설치를 시발로 대기업그룹들이 잇따라 해외본사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처럼 해외본사제도를 다투어 도입하는 목적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현지법인들간의 역내 기능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그룹차원의 통합된 지역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지특성에 맞는 경영체제를 강화한다는게 세번째
목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기업의 글로벌 경영은 이제 막 걸음마단계일 뿐이다.
우선 양적인 면에서 해외투자잔액이 100억달러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본의 1.7%에 불과하고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조사한 해외자산 규모별 세계 100대 다국적
기업리스트에서도 한국기업은 찾아 볼 수 없다.
92년기준 이 리스트에 100위로 기록된 미국 알코아사의 해외자산은 45억
달러인데 국내기업중 해외투자를 가장 많이 했다는 삼성전자의 해외자산은
94년기준 22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투자의 내용면에서도 한국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은 아직 갈길이 멀다.
일부 대기업그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해외투자 동기가 저임의 노동력
확보라는 인건비상의 경쟁력 유지적 차원에서 답보하고 있다.
생산은 물론 연구개발 등 경영활동을 적지에 배분해 "총체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경영은 드물다.
이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반도체기술 선진국인 미국의 심장부
에 뛰어든 것이라든지, 대우자동차가 영국 독일에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사례 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해외법인의 관리체제도 한국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