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누가 있는 거지?"

희봉이 재차 다그치며 비녀를 뽑아들어 경운의 입을 찌르려고 하였다.

경운은 비녀를 피해가며 급히 대답을 하였다.

"아씨, 제가 고자질을 했다고 그러지 마세요.

포이의 아내가 방에 있어요.

주인 어르신께서 술에 취해 얼마 전에 돌아오시더니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셔서 사람을 시켜 마님이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보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 그 사람이 갔다 와서 하는 말이 방금 연극이 시작되어 마님이
돌아오시려면 한참 걸릴 거라고 했거든요.

그러자 주인 어르신께서 저를 부르더니 은덩이 두 개와 비녀 두 개를
주시면서 그것들을 아무도 몰래 포이의 아내에게 갖다 주고 그 여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전 그저 주인 어르신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 여자를 데리고 왔더니 마님이 오나 안 오나 망을 보고 있으라고
했고요"

희봉은 경운의 말을 듣고는 술기운이 확 달아나면서 전신에 맥이
다 빠져버렸다.

마음 속으로는 독기가 치솟아 오르는데 몸에 힘은 하나도 없는 상태로
가련의 서재로 달려가려다가 그만 폭 꼬꾸라졌다.

평아가 달려와 희봉을 부축하여 뒤뚱뒤뚱 가련의 서재로 나아갔다.

서재 가까이 이르렀을 때 또 한 견습시녀가 망을 보고 있다가 쪼르르
안으로 달아났다.

"이년아, 거시 안 서!"

희봉이 고함을 지르자 그 계집아이는 영리하게도 금방 멈춰 서더니
공손히 인사를 해올렸다.

"마님, 이제 오세요.

안 그래도 마님을 찾아갈까 했는데"

"나를 찾아서 뭘 하게?"

"사실은 주인 어르신 서재에 다른 여자가 들어와 있거든요"

아양을 떨며 고해 바치는 견습시녀의 뺨을 한 대 갈기고 나서 희봉이
서재 문으로 바짝 다가갔다.

안에서 가련과 포이의 아내가 히히덕거리며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즈음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남편이 잘 해주는 모양이지. 히히"

"잘 해주긴요. 매일 밤 삶은 가지죠"

"삶은 가지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안 서고 축 처지기만 한다는 말이지, 뭐예요? 남의 애만 태우고"

"나도 마누라 앞에서는 종종 그래.

그런데 너만 안으면 청춘이 되돌아온 것 같단 말이야.

평아를 안아도 그러긴 하지만 평아는 아직 어린애라 너만큼 기술이
없거든"

희봉이 도끼눈을 뜨고 옆에 붙어 있는 평아를 노려보자 평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