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에 벌어진 북한군경비정의 북방한계선침범과 북한군미그기의
조종사망명은 4자회담 제의이후 북한의 공식반응을 주시하고 있던 한.미
양국으로서는 그리 원하지 않던 사건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정부는 일단 북한군의 잇단 "월경"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도발"로
단정짓지 않고 있다.

우리측이 고도의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어떤 분명한 "의도"아래 진행된 것인지를 확인하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이 의도가 확인돼야 "도발"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이날 오전 경비정침범과 관련, 비공식적으로 "가끔 발생하는
일"이라며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을 뜻임을 내비췄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17일 북한군 7명이 중서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침범
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재발시에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면서도 비공식적으로
는 "녹음기에는 분계선위치를 혼동해 가끔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미그기조종사 망명사건은 한.미양국은 물론 북한도 의도하지 않았던 우발적
사건이다.

특히 그동안 북한문제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 시각을 지키려 고심해온
미국측이 즉각 "분명한 망명"이라고 밝힌데다 기술적으로도 억지주장을
하기가 어려워 북한이 이를 문제삼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이날의 두 사건과 앞서의 정전협정위반행위들은 일단 휴전선을
중심으로한 남북한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고 북한이 이를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몰고 갈 경우 휴전선 상황은 극도로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한.미양국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미양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이같은 상황악화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확대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으로서도 4자회담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시점에서 수용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채 추가적인 군사행동으로 나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클 수 밖에
없다.

결국 일련의 사건들은 단기적으로 휴전선을 중심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
시키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4자회담을 축으로 한 평화체제모색이라는 큰
흐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북한이 이런 사건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진행시키고 있고 우발적인
망명사건 등을 악용하려고 한다면 남북관계의 앞날은 예측불허의 상태로
치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귀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