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쇄신위원회와 재정경제원이 지난 24일 발표한 금융규제완화 방안은
예상대로 변죽만 울린 정도에 그쳤다.

행쇄위와 재경원이 지난해부터 26개 과제에 대한 규제완화 내용을 놓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였지만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한도를 빠르면
오는 7월부터 폐지한 것 등 한두가지를 빼고는 별로 손을 댄게 없다.

이 방안은 표면상 총 16개 과제에서 규제완화를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든 리스 할부금융을 비롯한 일부 제2금융권의 신설자유화,
통화채 의무인수 폐지.연지급기간및 수출선수금 한도확대 조치 등의 시행
시기는 97~99년으로 설정되어 그 실현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형편이다.

금융규제완화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까닭은 기본적으로 정부당국이
금융규제를 완화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며 아울러 금융산업 개편방향을
확실하게 정립하지 못한 때문으로 봐야 한다.

물론 통화채인수폐지, 연지급기간및 수출선수금 한도확대 등은 하나같이
통화관리체제와 직결돼 있으며 이를 실현할 경우 정책금융부담이 재정부문
으로 이관된다.

따라서 먼저 간접적인 통화관리체제가 정착돼야 해결될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또 금융기관의 신설자유화나 은행장추천위및 금융전업가 규정 개선은
은행의 소유지배구조와 밀접히 연관돼 있어 역시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효율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절박하고 국내외에서의 압력이 거세 금융규제완화를 피할길은
없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강화는 산업구조고도화및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그 실행이 금융기관의 책임경영과 밀접히 관련돼
있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한도철폐가 그렇다.

부실채권증가와 통화관리 부담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 성패는
금융기관의 신용관리 능력에 달려 있다.

그렇더라도 이 문제는 해당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대응할 일이며 그것을
빌미로 금융규제를 계속해서는 안된다.

또한 통화관리가 어렵다고 현금서비스 한도를 부활시킨다면 지금까지의
행정편의주의적인 규제정책처럼 업계성장과 신용사회정착만 지연시킬뿐
금융선진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리스 카드 투자자문 등은 오는 98년부터의 설립자유화와 업무영역 통합이
맞물려 경쟁회사간에 우열이 판가름나게 된다.

따라서 경쟁에서 탈락한 금융기관의 합병,파산처리 등이 불가피한데
이때에도 경제력집중이 또 문제가 된다.

어차피 부실금융기관을 떠맡을 능력은 대기업집단밖에 없는데 6대 시중
은행만 빼고 10대 대기업그룹이 아니면 괜찮다는 도마뱀 꼬리자르기 식의
규제완화로는 문제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번 금융규제 완화에는 은행의 해외지점 설치허가에 대한 창구단일화처럼
실속없이 건수만 늘리기 위해 급조된 인상을 주는 내용도 있다.

문제의 핵심을 피해 주변만 맴돌때 흔히 있는 현상이다.

정부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