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의 뒤끝은 언제나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몇년간에 걸친 초호황 직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반도체산업의 불경기는
반도체수출강국인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운용에 주름살을 줄 정도로
그 충격이 심각하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경기침체론에 대해 "세계 반도체업계의
승자인 우리가 패자의 논리를 따라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큰 소리쳤던
국내 유수의 반도체회사 책임자가 며칠전 비상대책회의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해 국내 반도체3사가 5%씩 생산을 감축하자"고 제의할 정도로 다급해진
것이 우리업계의 실정이다.

국내 반도체산업 종사자 모두가 그동안의 초호황분위기에 들떠 경기의
부침이 심한 반도체시장생리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햇빛이 쨍쨍할때 건초를 마련해두어야 하는 건데 우리는 그동안의 호황기에
긁어모은 돈을 국내 반도체산업의 취약점 보완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반도체 경기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체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반도체의 비중이 단일품목으로서는 가장 많은 17.7%(95년)에
이르고 있는 현실로 보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요즘 우리의 무역수지에 비상이 걸린 것도 수출의 견인차인 반도체의
수출가격이 지난해 가을보다 60%가까이 내린데다 공급과잉으로 수출마저
부진하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00년에는 세계반도체시장규모가 지금보다 배가까이
늘어난 3,000억달러로 확대될 것이라고 하니 장기전망은 밝은 편이다.

우왕좌왕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반도체 수출에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오히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우리 반도체산업의 체질강화와 구조개편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첫째 제품의 다각화로 메모리분야 일변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국 반도체협회(SIA)의 예측으로는 올해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2.3%줄어들고 내년에도 0.3%정도 감소할 전망이지만 비메모리
분야의 매출은 계속 두자리수의 꾸준한 성쟁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미.일반도체업계가 메모리분야 증설계획을 잇따라 취소하고
비메모리 쪽으로 투자방향을 바꾸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비메모리 분야의 기술개발에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하겠다.

둘째 공정기술의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공정기술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웨이퍼당 칩생산량을 늘리는 "숴링크
(Shrink)기술"의 혁신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기술만 혁신해도 50%이상의 생산성량 상효과가
있다고 하니 곧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아닐수 없다.

끝으로 반도체기반기술을 뒷바침하기 위한 "반도체기술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긴요하다.

반도체 산업은 "반짝산업"이 아니라 고부가가치중심의 미래산업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양위주의 한탕주의가 아니라 반도체수출강국에 걸맞는
질로서 승부를 해야 한다.

변덕이 심한 반도체경지에 지금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게 위해서도 산.학.연
협력체제의 기술인프라 구축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