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일터로] (13) 제2부 : 고급여성인력 활용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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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홍보대행 업체인 버슨 마스텔러사의 싱가포르 지사에 근무하는
탄팩화(진벽화.40)씨.
재무담당 부서장인 그는 미혼여성이다.
결혼을 못했다기 보다는 안한 케이스다.
"혼자 살기에 수입도 충분하고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 굳이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게 탄팩화씨가 말하는 독신의 이유다.
게다가 평생 직장생활을 하는 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확신이 그녀를
"당당한 싱글"로 남게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버슨 마스텔러사 싱가포르 지사의 경우 지사장을 포함해 6명의
부서장이 모두 여성이다.
50여명의 직원중 여성이 80%에 달한다.
모두가 나름의 전문분야를 갖고 남성과 똑같이 일하고 있다.
임금이나 승진등에서 차별은 물론 없고 일할 의사와 능력만 있으면
쫓겨날 염려도 없다.
탄팩화씨는 그래서 앞으로도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싱가포르는 커리어 우먼들에겐 천국이다.
동남아 국제금융 중심국답게 여성에 대한 시각이 우선 열려 있다.
또 사람을 철저히 능력대로 평가하는 관행이 뿌리 깊다.
이런 고용문화는 사실 싱가포르의 경제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인구 300만명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인력이 만성적으로 모자란다.
특히 지난 80년대 중반이후 산업구조가 금융 서비스등 지식집약적으로
재편되면서 고급인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
여성인력 활용이 이 나라 고용정책 핵심으로 등장한 건 당연한 귀결
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중요한 건 "일하는"사람이지, 남자냐 여자냐는 문제가
안된다.
"이광요 전총리가 수족 멀쩡한 거렁뱅이와 고학력 실업자는 눈뜨고 보지
못했다"는 얘기야 말로 싱가포르의 고용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싱가포르의 현실은 철저한 엘리트 위주 교육에서도 증명된다.
이 나라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중 대학 문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상위 5%에 불과하다.
대학이 싱가포르 국립대(NUS)와 남양기술대학(NTU) 2개 뿐이어서다.
한정된 자원을 갖고 철저히 필요한 인력만 키워내겠다는 고용전략이
배경에 깔려 있다.
대학에서도 엘리트를 솎아 내는 작업은 계속된다.
졸업생들에겐 성적에 따라 보통 5개 등급으로 나눠 학위가 주어진다.
일반기업에서 1등급과 5등급 졸업생간의 초봉차이는 연간 최고 1,000달러
에 달한다.
근무연수로 환산하면 8년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소수 정예만 대학에서 뽑아내다 보니 남녀를 따질 계제가 못된다.
그래서인지 대학의 남녀 학생비율을 보면 거의 50대 50이거나 오히려
여학생이 많은 경우도 있다.
NUS의 경우 총정원 1만7,000명중 절반이 여학생이고 NTU 경영대는 정원
600여명중 여성이 70%인 420여명에 달한다.
대학입학에서 부터 남녀에게 차별없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의 남녀평등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다"(에버린 웡 싱가포르 노동연구소장)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싱가포르의 여성고용에 걸림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주의와의 대립."싱가포르 정부는 사회정책의 초점을
가족주의의 조장에 맞추고 있다.
국가 재정상 한계로 육아나 노부모 부양등을 가정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가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가능한 한 가정 안에서 해결하라는게 기본
방침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난해 소위 "효도법"을 만들어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부모가 그 자식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차원
이다.
결국 정부의 가족주의 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장영철 NUS경영대교수).
게다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면서 만혼이나 독신여성이 늘고
있는 현상도 하나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남성과 차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다보니 미혼여성들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싱가포르 정부의 가족주의 정책을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가족주의를 양립시키기
위해 고심중이다.
여성의 파트타임 고용이나 변형근로시간 제도등을 적극 도입하려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일부 은행이나 병원에선 여성인력 활용의 수단
으로 파트타임제 등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책은행중 하나인 POSB가 대표적인 예다.
"전체 800여명의 여직원중 200여명이 파트타임 사원이다.
주로 주부인 이들은 대개 고객들이 많은 점심시간에 집중 배치된다.
파트타이머들은 자신이 편한 시간을 정해 1주일에 20시간씩을 근무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가능하다"
(리리 치 POSB 노조간부).
싱가포르는 이처럼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여성들의 결혼을 "독려"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상충되는 "여성인력 활용"과 "가족주의"를 조화시키는게
싱가포르 정부의 최대 정책목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NUS를 졸업한 후 이메징이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근무
하고 있는 포 란엥양(24)은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방향에 충실한 여성인지
모른다.
미혼인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길 원하지만 가정과 일중
하나를 택하라면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가정은 여성이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순종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일보다는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대답이 싱가포르 정부의 구미에 맞든 안맞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싱가포르에서 능력차별은 있어도 성차별은 없다는 사실이다.
< 싱가포르 차병석 기자
이용만 LG경제연 책임연구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
탄팩화(진벽화.40)씨.
재무담당 부서장인 그는 미혼여성이다.
결혼을 못했다기 보다는 안한 케이스다.
"혼자 살기에 수입도 충분하고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 굳이 결혼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게 탄팩화씨가 말하는 독신의 이유다.
게다가 평생 직장생활을 하는 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확신이 그녀를
"당당한 싱글"로 남게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버슨 마스텔러사 싱가포르 지사의 경우 지사장을 포함해 6명의
부서장이 모두 여성이다.
50여명의 직원중 여성이 80%에 달한다.
모두가 나름의 전문분야를 갖고 남성과 똑같이 일하고 있다.
임금이나 승진등에서 차별은 물론 없고 일할 의사와 능력만 있으면
쫓겨날 염려도 없다.
탄팩화씨는 그래서 앞으로도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싱가포르는 커리어 우먼들에겐 천국이다.
동남아 국제금융 중심국답게 여성에 대한 시각이 우선 열려 있다.
또 사람을 철저히 능력대로 평가하는 관행이 뿌리 깊다.
이런 고용문화는 사실 싱가포르의 경제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인구 300만명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인력이 만성적으로 모자란다.
특히 지난 80년대 중반이후 산업구조가 금융 서비스등 지식집약적으로
재편되면서 고급인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
여성인력 활용이 이 나라 고용정책 핵심으로 등장한 건 당연한 귀결
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중요한 건 "일하는"사람이지, 남자냐 여자냐는 문제가
안된다.
"이광요 전총리가 수족 멀쩡한 거렁뱅이와 고학력 실업자는 눈뜨고 보지
못했다"는 얘기야 말로 싱가포르의 고용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싱가포르의 현실은 철저한 엘리트 위주 교육에서도 증명된다.
이 나라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중 대학 문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상위 5%에 불과하다.
대학이 싱가포르 국립대(NUS)와 남양기술대학(NTU) 2개 뿐이어서다.
한정된 자원을 갖고 철저히 필요한 인력만 키워내겠다는 고용전략이
배경에 깔려 있다.
대학에서도 엘리트를 솎아 내는 작업은 계속된다.
졸업생들에겐 성적에 따라 보통 5개 등급으로 나눠 학위가 주어진다.
일반기업에서 1등급과 5등급 졸업생간의 초봉차이는 연간 최고 1,000달러
에 달한다.
근무연수로 환산하면 8년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소수 정예만 대학에서 뽑아내다 보니 남녀를 따질 계제가 못된다.
그래서인지 대학의 남녀 학생비율을 보면 거의 50대 50이거나 오히려
여학생이 많은 경우도 있다.
NUS의 경우 총정원 1만7,000명중 절반이 여학생이고 NTU 경영대는 정원
600여명중 여성이 70%인 420여명에 달한다.
대학입학에서 부터 남녀에게 차별없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다.
"싱가포르의 남녀평등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철저한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다"(에버린 웡 싱가포르 노동연구소장)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싱가포르의 여성고용에 걸림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주의와의 대립."싱가포르 정부는 사회정책의 초점을
가족주의의 조장에 맞추고 있다.
국가 재정상 한계로 육아나 노부모 부양등을 가정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가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가능한 한 가정 안에서 해결하라는게 기본
방침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지난해 소위 "효도법"을 만들어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부모가 그 자식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차원
이다.
결국 정부의 가족주의 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장영철 NUS경영대교수).
게다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면서 만혼이나 독신여성이 늘고
있는 현상도 하나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남성과 차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다보니 미혼여성들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싱가포르 정부의 가족주의 정책을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가족주의를 양립시키기
위해 고심중이다.
여성의 파트타임 고용이나 변형근로시간 제도등을 적극 도입하려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일부 은행이나 병원에선 여성인력 활용의 수단
으로 파트타임제 등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책은행중 하나인 POSB가 대표적인 예다.
"전체 800여명의 여직원중 200여명이 파트타임 사원이다.
주로 주부인 이들은 대개 고객들이 많은 점심시간에 집중 배치된다.
파트타이머들은 자신이 편한 시간을 정해 1주일에 20시간씩을 근무할
수 있다.
또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가능하다"
(리리 치 POSB 노조간부).
싱가포르는 이처럼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여성들의 결혼을 "독려"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상충되는 "여성인력 활용"과 "가족주의"를 조화시키는게
싱가포르 정부의 최대 정책목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NUS를 졸업한 후 이메징이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근무
하고 있는 포 란엥양(24)은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방향에 충실한 여성인지
모른다.
미혼인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생활을 하길 원하지만 가정과 일중
하나를 택하라면 가정으로 돌아가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가정은 여성이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순종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일보다는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대답이 싱가포르 정부의 구미에 맞든 안맞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싱가포르에서 능력차별은 있어도 성차별은 없다는 사실이다.
< 싱가포르 차병석 기자
이용만 LG경제연 책임연구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