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이번에 생산량을 줄이기로 한 것은 "메가당 1달러"선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로 볼 수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업체로서 솔선해서 생산량을 줄임으로써
다른 업체들의 감산을 유도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공급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는 세계 시장에 물건을 덜 풀어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삼성의 이번 조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을 자임함으로써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다른 업체들의 감산을 선도해 반도체 값을
마지노선인 "메가당 1달러"선에서 묶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한일 메이커들은 그동안 공급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은 최근 국내업체 관계자들과 가진 모임에서
"16메가D램 생산물량을 줄이자"고 제안했고 현대전자 LG반도체 관계자들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메이커들과도 위기해소를 위해 감산을 위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삼성의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한일 반도체 업체들은 잇달아
감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각 업체들이 이처럼 생산량 축소라고 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은 반도체 시장에 가격이 지속적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하는 기대심리가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일 반도체 업체들이 지난해 말 발표한 16메가D램 생산계획대로라면
각 업체의 연말 생산량은 합계 월 1억개를 웃돌아 5월말 현재보다 3배이상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가격하락세는 더욱 가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수요업체들이
반도체 매입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다"(김치락 반도체 산업협회부회장)는
것.

그러니까 증산보류가 아닌 감산이라는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이같은
기대심리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포석이다.

또 실질적으로 공급물량을 줄여 가격을 안정시키고 시장을 공급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올들어 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수요업체들이 주도권을
쥐었다는 것"(전자산업진흥회 이상원부회장)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시 말해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되던 가격이 수요업체들의 의도에
따라 변하게 됐다는 것.

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6주동안 재고를 안고 있던 수요업체들이
올들어서는 1주일도 재고를 쌓아놓지 않으려 한다"(삼성전자 C이사)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어떻게 하든 물량을 확보해 놓고 보자는 식이었던 수요업체들이 대규모
매입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

이에 따라 공급업체들은 재고 물량을 대신 떠안게 됐고 그 물건들이
현물시장으로 싼 값에 흘러들어가며 가격인하를 부추겼다.

결국 공급업체들이 주도권을 놓침으로써 수요업체들의 의도대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각 메이커들이 잇달아 감산조치를 취할 경우 반도체
가격은 쉽게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공급과잉 물량은 수요대비 5%정도다.

따라서 각 업체들이 조금씩만 생산량을 줄일 경우 시장상황은 금방
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반도체 메이커들의 공조체제가 어느정도 까지 이루어질 지는
확실치 않다.

공조체제를 유지시킬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업체들만 하더라도 정부등이 개입할 경우 당장 통상문제가
일어난다.

더구나 일본 반도체 업계까지 공동보조를 취해야 할 상황이니 각
업체들이 어느선까지 같은 마음으로 가게 될지는 불투명하다"(현대전자
K이사)는 게 업계가 우려하는 점이다.

그러나 삼성의 이번 감산조치에 따라 "한일 업계가 어떤 형태로든
생산물량 줄이기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김부회장)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이상 가격하락을 방치할 경우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공멸"할 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는 가격하락으로 매출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차세대 제품인 64메가D램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반도체 메이커들이 공급물량 축소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위기 넘길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