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제경쟁력 챔피언은 미국이 아니라 싱가포르다".

세계굴지의 경제연구기관 세계경제포럼은 국제경쟁력 평가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를 자부하는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에게 반기를 들었다.

IMD의 경쟁력 평가에 문제가 있다며 별도의 "96년 세계경쟁력 보고서"를
내놓은 것.

세계경제포럼은 IMD와 공동으로 지난 80년이후 매년 세계 각국의 경쟁력
점수를 매겨온 IMD의 최대 파트너였다.

그러나 연구위원간 평가방법을둘러싼 불화가 생기면서 세계경제포럼측이
지난해 결별을 선언했다.

세계경제포럼이 독자노선으로 나서면서 내놓은 작품이 29일 발표한 "96년
세계경쟁력 보고서".

이 보고서는 세계 올해 최강의 경쟁력 타이틀은 IMD가 뽑은 미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정했다.

작은 살림살이지만 개방구조와 작은 정부, 낮은 세율로 탄탄한 재정을
꾸려가고 있다는게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의 경쟁력 국가로 선정한 이유였다.

반면 미국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부지출과 세금, 낮은 저출율, 비합리적
인 사법제도에서 점수를 크게 잃어 4위로 밀려났다.

이 보고서에서는 또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독일(22위)이나 프랑스(23위)보다
한수 위인 20위라고 밝혔다.

한국의 경쟁 전력을 27위로 중국(26위) 아래로 밀어놓았던 IMD와는 사뭇
다른 평가이다.

반면 세계경제포럼은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IMD보다 10계단이나 낮은 36위로
강등시켰다.

양기관간 국제경쟁력 순위를 똑같이 매긴 나라는 이스라엘(24위)과 필리핀
(31위)단 두곳뿐.

가장 차이가 심한 나라는 태국으로 IMD는 30위, 세계경제포럼은 14위로
채점했다.

무려 16계단이나 떨어진 순위다.

IMD로부터 중간등수(23위)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말레이시아에게 세계
경제포럼은 10위라는 높은 점수를 줬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과 유럽경제의 핵 독일에 대한 평가에서도 양
기관간 커다란 시각차이가 드러났다.

IMD의 조사에서 각각 4위와 10위에 랭크돼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던 일본과
독일에 대해 세계경제포럼은 13위와 22위라는 가차없는 평가를 내렸다.

일본은 국제무역과 금융에 대한 두터운 규제조치, 독일은 복지제도 낙후와
정부및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각각 낙제점의 주범이었다고 세계경제포럼은
설명했다.

세계 굴지의 연구기관사이에 이처럼 판이한 경쟁력 평가가 나온 것은
경쟁력에 대한 정의와 평가 방법의 차이 때문(마차 레빈슨 세계경제포럼
국장)이다.

"생활수준을 획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끌어올릴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세계경제포럼이 내놓은 경쟁력에 대한 규정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이런 정의에 따라 무역및 금융시장개방, 국가 예산및 규제,
금융시장발전, 노동시장 유연성, 사회간접자본시설, 기술, 기업경영, 사법
제도등을 평가하는 1백55개 항목을 만들어 각 나라의 성적을 매겼다.

IMD도 국내경제, 국제화, 정부, 금융, 사회간접자본, 기업경영, 과학기술,
인력등 8개 부문 2백25개 항목별로 평가했다는 점에서는 형식상 비슷하다.

그러나 경제활동의 공격성과 투자매력도의 비중을 높게 뒀다는 점이
대표적인 차이점으로 지적됐다.

레빈슨 국장은 이와관련, "현재 경쟁력의 정의와 평가방법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같은 과정에서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경쟁력은 바로 이것"이라는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다는 얘기다.

내로라는 연구기관들조차 똑같은 나라를 두고도 상위권과 하위권을
넘나드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은 변별력을 잃은 시험이다.

평가기능을 상실한 시험 성적에 비춰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이 이들 국가경쟁력보고서를 단지 "참고사항"일뿐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