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순태 < (주)흥해 감사 >

지난 58년 도선사면허를 취득한 이후 93년 정년퇴임때까지 인천항을
입출항하는 선박들의 안전한 도선에 34년간을 전력투구해온 공로를 인정
받았다.

52년도엔 갑종 선장면허를 취득한뒤 우리나라 최초의 외항선 선장으로
광복후 처음으로 한국선박에 태극기를 달고 영국 뉴캐슬항과 리버풀항에
입항해 현지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또 70년 본인 소유건물의 일부를 할애, 한국도선사협회 임시사무소를
개설하는등 협회설립의 산파역을 맡았고 74년5월 동양최대, 국내유일의
특수항만시설로 준공된 인천항 선거에서 첫입항한 여수호의 도선을 성공적
으로 해냈다.

밀가루품귀 파동에 휘말렸던 76년6월 소맥을 싣고온 "헥터"호가 선폭이
인천항 갑문 입.출 허용폭을 초과하는 바람에 인천 앞바다에 발이 묶여 있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도선으로 입거한 것과 88년1월 허용한도를 120%나 초과
하는 양곡선 "아니카"호를 무사 접안시킨 것은 지금도 "신화"로 통하고
있다.

77년과 84년 겨울 한파내습으로 인천항이 결빙돼 마비상황에 처했을때
예인선 스크루를 돌려 제빙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해 선박입출항 두절에
따른 막대한 항비부담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86년 국내최초로 완공된 평택항 LNG인수기지에 처녀입항한
10만t급 LNG선 "골라 스리리트"호를 능숙하게 도선, 접안시켰고 87년엔
기아자동차의 수출차 선적을 위해 인천항에 입항한 세계최대규모 자동차
전용선인 "노삭타이샷"호를 최초로 도선, 도선기술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과시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엔 소련선수단과 관광객들을 태우고 한국을
첫방문한 소련여객선 "미하일 솔로호프"호를 인천항으로 순조롭게 도선하는
등 동구권에까지 국위를 선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