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연산 40~50만t 짜리 NCC 4기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동남아 인도 등도 신규설비의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의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한국의 수출감소는 불을 보듯
뻔하다.

대책이 있는가"

30~31일 이틀간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동아시아
석유화학공업회는 한국의 NCC증설을 둘러싼 논쟁으로 일관하디시피 했다.

특히 일본과 대만이 국내업체들을 거세게 몰아세웠다.

후루카와 일본유화협회장은 "세계 에틸렌 생산은 94년 6천4백80만t에서
2000년엔 8천3백30만t으로 늘어 98년엔 9백만t이상의 공급과잉이
예상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지역 업체가 신증설에 나서면
아시아유화산업은 불황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은 "민간투자자율조정협의회를 구성해 공급과잉을 초래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버텼다.

일본과 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이 한국의 설비확장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한국의 입지강화를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을 상대하기 버거운데 설비확장까지 하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약화되지 않겠느냐는게 일본의 우려.

게다가 일본은 현재 70만t짜리 외에는 증설 계획이 없다.

아시아 유화시장에서의 한국의 입지강화는 사실 90년대 초반부터
예견돼왔다.

현대 삼성등 후발사들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업체들은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섰다.

지난해엔 무려 1백90만t을 아시아시장에 내다팔았다.

아시아지역에서 거래된 전체물량 4백40만t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다.

한국이 최대 생산국은 아니다.

그러나 수출량이 워낙 많다보니 국내업체가 정기보수에 들어가면
유화제품의 국제가격이 급등하고 정기보수가 끝나면 가격이 곧바로 하락할
정도로 한국은 가격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설비확장을 둘러싼 한국과 일.대만간 공방은
가격주도권 문제이기도 하다.

설비확장을 통해 "우월적 지위"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게 한국의
포석인데 비해 일본과 대만은 설비확장을 막아 한국의 지위를 끌어내리
겠다는 입장이다.

국내업체들의 설비확장은 또 아시아지역의 수요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아시아국가들의 경제성장속도나 경제개발계획으로 미루어 볼때 이
지역이 세계유화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할게 분명한 만큰 시장선점
차원에서도 확장은 필요하다는 것.

이번 회의에서 마케팅세미나를 개최한 미국의 유화전문 연구기관
켐시스템도 2000년엔 아시아국가들의 에틸렌 생산비중이 26%로 높아져
미국과 유럽의 가격지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내업체중 가장 먼저 NCC설비 확장을 선언한 현대석유화학은 이런
점들에 근거해 "수입국들이 신규투자에 착수하기 전에 먼저 투자함으로써
공장건설보다는 수입쪽으로 계획을 수정토록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지역 에틸렌의 수요가 지난해 1천8백만t에서 2000년엔
2천5백만t으로 7백만t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규증설분은 5백40만t에
불과해 6백만t이 모자란다는게 현대의 전망.

LG석유화학 한화종합화학 유공등도 일본이나 대만의 지적대로 공급과잉을
우려해 신증설을 멈추면 후발국들에 주도권을 뺏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아시아 시장전망이 밝은 만큼 한국의 신증설은 확실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현대석유화학 안홍환상무)는 얘기다.

어쨋든 이번 동아시아유화회의는 "빅 브라더"로 성장한 한국의 위치를
재확인한 자리가 됐다.

경쟁국들의 우려를 수용해 신증설을 자제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부담"을
안고 우월적 지위 유지전략을 밀어붙이느냐의 선택은 결국 한국에 달려있고
그에 따라 향후 아시아유화산업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