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호주에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우리의 "줄서기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중전화박스앞에서 전화순서를 기다릴 때나, 화장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애태울때, 은행창구에서 현금 인출단말기를 사용할때, 우리들은
대개 그 바짝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남보다 먼저 왔다고 해서 반드시 뒤에 온 사람보다 먼저 차례가
오지 않는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은 "줄을 잘 서"빨리 빨리 차례가 오는데, 내가
선 줄은 왜 항상 오래만 걸리는 건지..

왜 "머피의 법칙"은 나에게만은 예외없이 적용되는지..

전화하러 공중전화박스에 갈때마다 어느 줄에 설까 신경써야하고
화장실앞에서도 스트레스만 쌓이고, 돈 찾으러 간 은행에서 마저 끊임없는
눈치싸움을 한다.

살아오면서 줄만 잘 서면 남보다 빨리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우리네 몸에 배어들게 된다.

이러한 생활이 일상화되다 보니 차츰 국민성속에 기회주의 근성이
만연하게 된다.

앞으로 대중 편의시설을 사용할때는 한줄로 서서 먼저 온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차례가 갈 수 있도록 장치를 하면 어떨까.

호주의 경우 화장실 앞에 많은 사람이 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왜그럴까하는 생각이 들고, 다소 불편한 듯 했지만 오히려
그 방법이 훨씬 마음을 가볍게 했다.

우리가 조금만 남을 생각하면 줄 설때마다 신경전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조금만 서로 협조하면 다 함께 수긍할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명랑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배훈 <광주 동구지산1동>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