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이 한.일공동개최로 확정됨으로써 정치권도 "월드컵유치
여파 "에 휩싸이고 있다.

4.11총선후 여야간 강경대치로 치달아온 정국이 어떤 형태로건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해 지고 있다는 얘기다.

야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무소속으로 당선된 15대의원이나 야당으로
당선되었으나 소속당을 탈당한 의원 가릴것 없이 무차별 영입을 강행해온
여권으로서는 이제 또하나의 호재를 얻게 됐다.

야당은 아직 내색하지는 않고 있으나 대도시를 순회하는 옥외집회등의
장외투쟁은 명분만 찾으면 철회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군 미그기귀순과 정갑렬 장해성씨의 망명등으로 조성
되고 있는 미묘한 남북관계나 식량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에 대한 지원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서도 정국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여권의 논리가 야권을
옥죄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가등 민생현안과 국제수지악화등 국내문제도 야권의 장외투쟁이 빛을
바래게 만들고 있었다.

야권은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월드컵유치나 남북문제등에 관해서는 초당적
으로 대처하겠지만 국내정치현안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휴일과 주초에 벌어질 여야총무간 접촉에서 뭔가
타협점을 찾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신한국당은 일단 "월드컵유치"를 정국주도권 확보의 카도로 최대한 활용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득정책위의장과 김철대변인은 1일 국회차원의 "월드컵지원특별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을 거론하는가 하면 장외투쟁의 명분없음을 부각시키는 등
정치판을 "월드컵정국"으로 유도하고 나섰다.

물론 이의장은 "2002년 월드컵은 6년뒤의 문제로 여야간 공조를 위한
시간적 여유가 많이 있다"며 "특위구성을 위한 여야협의와 오는 5일 국회
개원을 둘러싼 여야협상은 별개의 문제"라며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밝히긴
했다.

여권일각에서도 "먼 훗날 일을 가지고 야권을 너무 코너에 몰아넣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당의원들은 종합적인 국내외 상황은 하루빨리 정국이
정상화돼야 한다는데는 공감하고 있다.

이들은 여권이 단독국회 강행등의 강수를 써지 않더라도 야권 스스로가
개원국회참석등의 명분을 찾을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분석하에 신한국당은 개원국회소집요구서를 소속의원 1백51명의
이름으로 이날 국회에 제출했다.

강삼재사무총장은 특히 이날 월례조회에서 "월드컵유치는 우리의 저력과
문민정부출범이후 신장된 국력을 내외에 알리는 쾌거"라며 "21세기 중심
국가로 우뚝서는 전기가 될것이며 성공적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월드컵유치가 국정의 책임을 맡고 집권세력의 공이라는점을 최대한 부각
시키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야권의 장외투쟁에 대해 "구태의연한 정치공세를 중단하고 열린
마당인 국회에 들어와야할 것"이라며 월드컵유치에 따른 정국주도권을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월드컵유치와 곧바로 연결시킬수는 없지만 강총장은 이날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정책개발과 국민의 품으로 성큼 다가서는 자세로 야당과의 차별화를
달성, 내년 대선에서 이길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15대 개원국회는 물론 올가을 정기국회를 여권이 주도하고 내년의 대선
정국으로까지 이같은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야권은 오는 8일 대구를 시발로 광주(15일) 대전(16일)등 이미 계획해
놓은 장외집회를 취소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강행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당안팎의 지적에 난감해하고 있다.

야권은 내심으로는 여권이 등원할수 있는 명분이라도 주기를 고대하는
국면에 처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권은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월드컵을 6년후에 그것도 단독도 아닌 공동
개최하는 문제정도 때문에 정국을 여권 페이스대로 이끌려가도록 놔둘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야3당은 물론 월드컵 유치자체는 환영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국민회의측은 그러나 이날 오전 공식 논평을 통해 "반쪽이나마 월드컵유치
에 성공한 것은 환영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을 믿고 월드컵단독개최를 확신
했던 국민들의 실망이 큰 것 같다"고 밝혔다.

설훈대변인은 "정부여당이 공동개최가 성공인것 처럼 강변하고 나선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태도"라고 비판하고 "겸허한 자세로 반성하면서 일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라고 주문했다.

이같은 논평은 설대변인이 이날 김대중총재를 면담하고 나온 것으로
그가 전날 "가능하다면 북한에서도 경기가 열려 남북관계 해빙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비공식 코멘트한데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여권이 월드컵유치를 국민적 축제분위기로 유도하면서 반사적으로 야권의
입지를 줄여보겠다는 전략에 일조할수는 없다는 일종의 "위기감"의 발로로
볼수있다.

어쨋든 야권은 이번 월드컵유치로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는게
사실이고 그에따라 정국의 풍향도 상당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박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