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흐름을 눈여겨보면 대체적으로 시대가 내려오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이 낮아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된다.

철제 무기가 등장하기 이전 초기 농경사회에서는 모권이 강했다.

지모신신앙을 가졌던 토착부족 세력의 제사를 주관했던 것은 여사제들
이었다.

신라때 선덕.진덕.진성 등 세 여왕이 즉위할수 있었던 것은 여성도
가계혈통을 이을수 있는 자격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리고 여왕들이 통치에 예언적 방법을 쓰는 등 샤만의 성격이 짙었다는
사실은 신라여성의 종교적 위치가 남성보다 우위에 있었거나 적어도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오면 권력집단인 국가기관은 이미 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지만 여성은 가정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여전히 제례와 종교활동은
여성이 주관했다.

조선조초에는 모계.외가중심의 고려유습이 강해 여성도 가족내에서는
그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게 간주됐으나 17세기 이후 종법제가 정착되고
문중이 강화돼 적장자를 우대하는 부계중심의 양반사회로 변모되어가면서
여성은 가부장제에 깊이 예속돼 갔다.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뒷바라지역으로 퇴앵하고 남존여비사상이
뿌리박혀 완전히 중문안으로 유폐된것도 이무렵부터다.

그이후 여성들은 "전생에서 죄많이 지은자가 이승에 여자로 태어난다"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진 요즘에는 자녀를 낳아 기르고 음식을 준비하는
등 집안을 돌보는 일만이 여성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을성 싶다.

"성취되지않은 소망"을 뜻하는 "한"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도 이제는
거의 다 사라져 가고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6년 1.4분기 고용동향"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성가사종사자가 69만여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5%나 늘어난
반면 여성가사종사자는 0.6% 늘어나는데 그친것으로 나타났다.

남성가사종사자의 대부분이 중고령층에 몰려있는 것은 조기퇴직자나
고소득 배우자를 둔 남성들이 직장없이 외조나하며 집안일을 돌보고
있기때문이란 분석이지만 어떤경우든 이들이 "집에서 노는 남자"임에는
틀림없다.

"바깥일을 하는 여자"가 늘어나는 것은 대세이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집에서 노는 남자"가 많아진다는것은 당사자는 물론 사회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소설가 이상이 "날개"에서 아내의 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탄생을
꿈꾸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치던 절규가 생각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