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환실장(54)은 그룹에서 "시어머니"로 통한다.

워낙 "입바른"소리를 잘해서 얻은 별명이다.

그의 "잔소리"를 듣는 대상은 회장이라 해서 예외가 될수 없다.

"샐러리맨은 사직서를 품안에 품고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소신을 갖고 일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인만큼 회장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김실장은 그룹 종조실장으론 드문 케이스인 공무원 출신이다.

그는 70년대초 상공부의 유능한 사무관이었다.

그가 쌍용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이 그룹 창업주이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김성곤씨(1대)의 비서실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부터였다.

75년부터 91년 사장자리에 오르기까지 16년간 (주)쌍용에서
해외영업통으로 자랐다.

(주)쌍용 사장에서 92년 김석원전회장(2대)에 의해 종조실장으로
발탁돼 김석준회장체제(2.5대)에서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실장하면 또 빼놓을수 없는 "장기"가 많다.

말뿐이 아닌 진짜 컴퓨터 "도사"에 인터넷광이다.

클래식에도 미쳐있는 매니아.

그동안 수집한 디스켓만도 3,000장이 넘는단다.

색소폰연주 솜씨도 빼어나다.

모르긴 해도 집안(부친은 연극인인 김동원씨, 막내동생이 전가수인
김세환씨)내력 때문일 게다.

그는 은퇴후의 희망이 무어냐고 물으면 "고급 오디오를 장착한 개인택시
운전사"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클래식 광이어서인지, 소탈한 성격때문인지는 알수없는 일이지만.

< 이성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