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를 둘러싼 재정경제원과 증권감독원의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일 백원구 증권감독원장이 구속된데 이어 4일에는 재경원 한택수
국고국장이 뇌물을 받고 기업공개를 알선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다.

기업공개라는 이권덩어리를 증권감독원 뿐만아니라 상부감독기관인
재정경제원도 나눠먹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알려진대로 기업공개는 대주주들이 뇌물을 갖다바칠 정도로 엄청난 이득을
안겨준다.

주식을 시가로 발행해서 액면가(5,000원)와의 차이는 고스란히 대주주
손에 들어가게 된다.

또 상장하면 1년에 3~4%(액면가기준)의 배당금만 주주들에게 돌려주면
되기 때문에 이자부담도 적은 편이다.

게다가 유상증자등으로 얼마든지 돈을 끌어낼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기업들은
공개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개를 원하는 기업은 많으나 공개물량이 한정돼있다는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88~89년 무분별하게 공개된 회사들의 상당수가 91~92년들어 경기
하강으로 부도를 내자 재정경제원과 증권감독원은 기업공개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공개기업은 92년과 93년 각각 8개사와 7개사에 불과했고 94년들어서 소폭
증가하느데 그쳤다.

현재도 공개를 위해 증권회사와 관리계약을 체결한 회사가 271개사에
달하고 있으며 외부감사인 지정을 신청한 곳도 126개사에 달한다.

반면 공개되는 회사는 1년에 2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기업공개가 적체를 보이고 있어 희망기업들이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때문에 먼저 공개되기 위해 "급행료"가 등장한다.

증권감독원은 공개순서와 관련해 제조업과 우량기업을 우선적으로 공개토록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잣대가 되지 못한다.

공개물량을 재정경제원이 임의로 조절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앞서서 공개될
경우 먼저 예정된 중소기업은 뒤로 미뤄지기도 한다.

또 상장요건을 갖추지 못하고도 증권당국에 대한 "로비"를 통해 상장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유양정보통신은 당초에는 지난해말께나 공개토록
돼있으나 10월에 공개키로 예정된 대주산업과 두고전자가 연기되면서 임의로
앞당겨진 케이스이다.

또 지난해 11월 상장된 코리아데이터시스템은 수출대금 미수금이 많아
상장요건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정경제원의 "입김"에 의해
공개된 기업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공개된 기업들 가운데 케이아이씨 화승전자 신우 서울도시가스
조일제지등은 부실회계처리로 당기순이익을 조작하거나 자산가치를 과대
계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주의조치만 받고 공개되기도 했다.

결국 이처럼 공개될 수 없는 기업들이 공개되거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은
재정경제원과 증권감독원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린데 기인한다.

원칙적으로 공개규모는 재정경재원이 결정하고 증권관리위원회가 의결을
통해 공개기업을 선정토록 돼있으나 증권관리위원회는 거의 유명무실하다.

공개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재정경제원과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개건이 증관위에 상정돼서 부결된 적이 없을 정도로 증관위는
철저히 "거수기"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사실상 재경원과 증감원의 일부 부서에서 공개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셈이다.

그만큼 청탁과 비리가 난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증권감독원내에서 항변의 소리도 없지는 않다.

이번 한국장의 구속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업공개의 대부분은 재경원이
주도하고 있을뿐 증감원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행가격 산정등 기업공개의 주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증감원
으로서는 불명확한 기업공개절차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게 증권가의
공통된 견해다.

<정태웅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