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관련된 한 나라 영상 문화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도 극장과 비다오 대여점, TV에서 어떤 영화들이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일일 것이다.

비디오 대여점들이 전국 방방곡곡 마치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우리나라
에서 이 대여점들의 양태는 곧 우리 영상문화의 축소판이라할 수 있다.

과연 그 곳에는 어떤 영상물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가?

제목부터 야릇한, 외국 같으면 성인용 섹션에나 있을 법한 야한 사진들로
표지를 장식한 국내외 에로물들이 헐리우드나 홍콩애서 만들어진 오락
영화들로 가득찬 점포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말만한 걸작들을 이
곳에서 찾아내기란 쉽지않다.

이러한 양상은 서울 시내 어느 대여점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으로 가게되면 더욱 요지경이다.

영화의 오락적 기능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영상물의 사회적,교양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한 채 우리네 집에서
불과 50미터도 안떨어진 대여점들이 극도로 상업주의에 물든 영상무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책방의 경우, 그러그러한 책들과 함께 양서들이 꽂혀 있기 마련인데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그러한 양서들에 견줄만한 걸작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사실은 균형을 잃은채 극도로 속화되어버린 우리의 부끄러운
영상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해주고 있다.

TV 프로들 역시 비디오 대여점의 그것들과 다를게 없다.

TV에서 방영되는 외국 영화들의 선정 방향만 보더러도 각 방송국들의
경영철학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경영철학은 동네 비디오 대여점 주인의 사업 방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극장에서는 과연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는가?

문화적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며 헐리우드 영화사들의 직배애 반대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서울 시내 극장들은 미국 직배사의 오락 양화들로
채워져 있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면면도 동네 비디오 대여점의 그것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이렇듯 어느 곳에서도 우리에게 삶의 벗이 되고 생활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영화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척박한 영상문화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런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내고 소개하여야 한다.

우리 영화사 백두대간 식구들은 그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 영상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질을 높여보고자 모인 사람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