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정병각감독)은 깔끔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다.

코르셋은 시인 장 콕토가 "낡은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의 고문도구"라고
몰아부쳤던 속박의 상징.따라서 제작진의 당초 기획의도는 한국적
페미니즘영화였다.

뚱뚱한 몸매와 넓적한 얼굴때문에 고민하던 한 여자가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고 육체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그리자는 것.

그러나 영화는 페미니즘의 가파른 언덕을 옆으로 비켜 코미디의 평지로
이동했다.

속옷디자이너 공선주(이혜은)가 회사의 바람둥이과장(김승우)에게
버림받고 우여곡잘끝에 횟집주인(이경영)과 결혼한다는 설정은 홀로서기가
아니라 안전지대로 피신하는 인상을 준다.

이는 주제의 무게를 담기에는 무리인 소재 탓도 있지만 신인감독의
조심스런 접근법에 따른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감수성은 예민하다.

평면적인 얘기를 잔잔한 웃음과 효과적인 조연연기, 재치있는 대사와
소품 등을 버무려 한편의 산뜻한 코미디로 완성했다.

신인여배우 이혜은의 연기도 영화진행과 함께 안정감을 찾아간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15kg 이나 늘린 그는 연극학도답게
기본기 습득이 빠른 편.

그가 펼치는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가슴 찡한 대목도 만나진다.

온갖 구박에 시달리던 선주가 친구와 함께 독립을 선언하고 그들의
뜻대로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패션쇼를 연출하는 장면이나 실연의
아픔을 삼키며 혼자 야채샐러드를 우겨넣는 모습등이 그것.

특히 사진처럼 짧은 정지화면으로 처리된 패션쇼신에 모델로 등장한
평범한 이웃들의 해맑은 표정은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8일 피카디리 시네월드 이화에술 경원 브로드웨이 록세예술 동아극장
개봉예정)

<고두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