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구? 나를 송사한다구?"

가련은 포이의 아내가 목을 매 죽었다는 말에는 별로 놀라지 않고
그녀의 친정 식구들이 가련 자기를 송사하려 한다는 말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네, 그러하옵니다.

임지효의 마누라가 그러는데 그들이 어르신을 송사하여 수백 냥의
돈을 받아낼 심산이랍니다"

"왜 나를 송사하겠다는 거야?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구? 내가 목을 매라고
그랬나 어쨌나"

"아마 그들은 송사를 하여 어르신이 자기네 딸을 겁탈하였다고 거짓
증거를 할 것입니다"

하인의 말을 듣고 보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송사하는 일을 어찌해서든지 막아야만 하였다.

"임지효를 곧 오도록 하여라"

가련은 하인의 전갈을 받고 달려온 임지효에게 이백 냥을 주면서
포이 아내의 친정 식구들을 달래보라고 부탁하였다.

장례식도 최대한 돕겠다는 약속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임지효의 중재로 가련은 송사에 걸려드는 일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바람 한 번 잘못 피웠다가 큰 망신을 당할 뻔하였다.

가련은 앞으로는 여자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추분이 지나 쌀쌀해지자 대옥은 또 영락없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토해내었다.

여느 때보다 증상이 더 심한 것 같았다.

대옥이 바깥 출입을 삼가고 있는 동안 보채가 병문안을 와서 대옥이
먹고 있는 약을 살펴보았다.

"대옥이 먹는 약에는 인삼과 육계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애.

그것들은 정기를 돕는다고는 하지만 열성이 센 것들이라 대옥이 같은
체질에는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거든.

그러니 내 생각에는 간열을 먼저 내리도록 하는 게 좋겠어.

간열이 내리면 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식욕이
생길 거란 말이야.

옛날 유명한 의원인 편작도 "곡물이 들어가야 산다"고 했잖아.

뭐니뭐니 해도 오곡으로 지은 음식을 먹는 것이 최상의 양약이거든"

"간열을 내리려면 어떤 약을 써야 하는데?"

대옥이 핼쑥한 얼굴로 지친 듯 힘없이 물었다.

"매일 아침 연와 죽을 쑤어 먹는 게 간열을 내리는 데는 특효약인
셈이지"

"언니가 내 병에 대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는 거 정말 고마워.

그동안 내가 성질이 고약해서 언니를 오해하고 미워한 적이 많았어"

사람이 병이 들면 마음이 비고 넓어진다고 했던가.

그 반대로 더욱 신경질적이 될 수도 있지만, 대옥은 지금 보채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한결 평온한 심정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