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의 대북경협 자세에 변화가 오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두가지.

하나는 "실적위주에서 실리위주로"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교역에서
투자로"이다.

이중 첫번째 방향전환은 올들어 이루어진 남북교역 승인실적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통일원이 지난 1~4월중 승인한 남북교역은 4백58건 7천4백64만달러.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금액기준으로 무려 32.2%나 감소했다.

물자교역은 핵사찰 시비 등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됐을 때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었다.

그런데 올들어 왜 이처럼 급감한 것일까.

이에대한 해답이 "대북경협이 실적위주에서 실리위주로 바뀌고
있다"(S그룹관계자)는 것이다.

국내기업들은 그동안 대북채널 확보차원에서 실리를 따지기 보다는
우선 실적을 쌓는데 치중해 왔다.

그러나 이제 웬만한 기업들은 나름대로 채널을 구축했고 따라서
실리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동안 북한과 물자교역을 해온 기업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상황에서는 북한으로부터 물자를 들여오는게 그다지 큰 메리트가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물자운송시 공해상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물류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

해상운임이 같은 거리의 다른 구간에 비해 20%이상 비싸다는 것.

또 북한의 항만시설이 열악해 선적이나 하역이 지체되기 일쑤다.

여기에다 북한내 거래선과의 통신상 애로로 인한 간접비용부담도
큰 편이다.

더구나 들여온 물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구상절차도 간단치가 않다.

물자교역이 위축된 이유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최근 북한의 에너지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생산활동이 침체됐고
따라서 북한과 거래할 만한 물자가 없다"는 것이다.

(D그룹관계자) 즉 실리를 따지기 전에 북한으로부터 들여올 물자가
없어 교역이 위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기업들이 북한에서 들여오는 품목중 가장 비중이 큰 금괴 아연괴
등 광산물의 반입이 격감한 이유도 바로 이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산 금반입은 관세(3%)면제혜택을 받기때문에 그동안 LG상사
동양글로벌 등에서 주요 교역품목으로 삼아왔는데 최근 북한내 금생산이
줄어들어 반입량이 종전의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기업들은 물자교역에서 실리를 따지는 한편으로 대북투자진출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최근 정부가 보여준 대북협력사업자 추가승인과 4자회담 제의
등 일련의 유화조치가 계기가 됐다.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그동안 위축돼 있던 주요기업의 대북경협
담당부서들은 앞다투어 조직을 확대개편하는 등 대북투자진출을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북경협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주)대우는 지난달 최초의
남북합작회사인 "민족산업총회사"가 영업을 개시한데 이어 전자제품
공장설립도 본격추진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기존의 삼성물산 북한팀 외에 지난 4월말 정부로부터
대북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은 삼성전자와 스피커공장 설립을 추진중인
삼성전관에 별도의 실무팀을 만드는 등 조직을 확대했다.

삼성은 이와 별도로 경제연구소쪽에서 남북통일 후 북한에서의 기업경영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는 등 장기적 차원에서도 접근하고 있다.

대북투자 진출과 관련해 요즘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그룹은 LG그룹이다.

LG는 지난달 북한에서 임가공 생산한 컬러TV를 들여온 것을 계기로
북한내 컬러TV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중이며 제철사업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관계자들에 따르면 LG의 제철사업계획은 북한의 김책제철소에
3천만달러 정도의 제철설비와 중국산 코크스를 공급하고 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판매를 맡는다는 것.

이들 외에 효성그룹도 북한내 섬유 등 경공업분야 진출을 위해
그룹고위관계자가 이달중 방북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진로그룹에서도 유통담당 총괄부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등
기업들의 대북투자진출 움직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 임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