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기업을 만드는 노사] (15) 동부제강..올 첫 무교섭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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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3월16일 오전 서울 삼성동소재 동부제강(주).
윤대근 사장은 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깜짝 놀랄만한 지시를 내렸다.
"4월1일부로 2천여명의 전직원에 대해 1호봉씩 특별승급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배경은 노조측이 올해 임금교섭을 무교섭으로 타결시킨데 대한 배려
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타결인상률은 통상임금기준 5.1%.
지난 몇년간 임금협상때 대부분 6개월이상의 소모적인 교섭을 벌였던
동부제강으로서는 올해 무교섭 임금타결이 그만큼 반가웠던 모양이다.
동부제강은 임금 후생 복지등 제반분야에서 동종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해
왔다.
지난 8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근로복지기금을 출연한 회사도 동부제강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노사관계는 계속 꼬이기만 했다.
임금교섭이나 단체협상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지리한 싸움을 해왔던 것이다.
또 잦은 대립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적절한 설비투자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급기야 94년9월에는 서울 인천 포항 부산공장등에서 13일간의 파업이
이어졌으며 지난해에도 쟁의가 발생, 회사분위기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조합원들사이에 노조측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다는 비난이
쏟아진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월, 15대 노조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창영씨(54)는 지난 80년대초 노조활동을 하다가
87년이후 서울공장에서 평조합원으로 일하고있던 인물.
"회사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의식을 지닌 각공장내 반장들이 평소
합리적인 노동운동노선을 견지하고있던 강위원장을 옹립했다.
15대위원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강위원장의 당선일성은
"회사는 조합원들의 의식수준만큼 발전하며 우리의 의식이 낡은 것일수록
회사의 장래는 어두워진다"는 것.
올해초 노조 중앙위원회를 소집한 강위원장은 "우선 우리의 과거를 반성
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보자"며 "노조에서 회사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독려했다.
지난 82년 회사창립이후 최초로 무교섭타결이 이뤄진 것은 이같은 배경
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조측은 이어 올해 단체협상도 회사측에 백지위임해버렸다.
노조측이 이처럼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회사측도 노조와 조합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 공장별로 "한마음협의회"를 구성, 임원들이 직접 근로자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고충을 해결하는데 앞장섰으며 각 공장별로 간담회를 열어
현장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나갔다.
또 노조사무실에 컴퓨터 온라인 시스템을 설치, 회사경영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했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 4월10일 경북 문경새재에서 창사이래 처음으로 본사
및 4개공장의 2천여 임직원이 함께 모여 "2001년 비전달성과 노사화합을
위한 전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회사측은 이같은 분위기에 고무돼 지난 93년 7천8백억여원, 94년 8천
5백억여원, 95년 9천9백억여원등 완만하게 늘어나고있는 매출실적을 올해는
1조2천억여원으로 부쩍 늘려잡았다.
또 주력상품인 고순도다결정 실리콘, 고투자율 극박냉연강판, 스테인리스
실버스톤 도장강판, 용융알루미늄 도금강판, 분말야금용 순철분 등에 대한
품질향상과 함께 해외판로개척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조철형 인천공장장겸 공장총괄임원은 "회사가 이처럼 공격경영을 펼칠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노사화합의식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동부제강차원의 노사화합에 만족하지않고 전철강산업의 노사
화합분위기를 선도할 수있도록 모범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조공장장은 45년생으로 공교롭게도 강위원장과 동갑이며 입사연도도 각각
72년과 73년으로 비슷하다.
또 사장을 대표해 회사내 안전.환경.노무관리를 직접 챙기고있는 총괄
임원을 겸직하고있어 강위원장과는 한달에 두번꼴로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가깝다.
대화도 부드러울 수 밖에 없다.
"동부제강에 일단 들어온 사원은 평생 못떠나도록 할겁니다" 두사람의
장담에 동부제강의 밝은 미래가 엿보인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
윤대근 사장은 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깜짝 놀랄만한 지시를 내렸다.
"4월1일부로 2천여명의 전직원에 대해 1호봉씩 특별승급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배경은 노조측이 올해 임금교섭을 무교섭으로 타결시킨데 대한 배려
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타결인상률은 통상임금기준 5.1%.
지난 몇년간 임금협상때 대부분 6개월이상의 소모적인 교섭을 벌였던
동부제강으로서는 올해 무교섭 임금타결이 그만큼 반가웠던 모양이다.
동부제강은 임금 후생 복지등 제반분야에서 동종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해
왔다.
지난 84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근로복지기금을 출연한 회사도 동부제강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노사관계는 계속 꼬이기만 했다.
임금교섭이나 단체협상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지리한 싸움을 해왔던 것이다.
또 잦은 대립으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웠기 때문에 적절한 설비투자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급기야 94년9월에는 서울 인천 포항 부산공장등에서 13일간의 파업이
이어졌으며 지난해에도 쟁의가 발생, 회사분위기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조합원들사이에 노조측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다는 비난이
쏟아진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월, 15대 노조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창영씨(54)는 지난 80년대초 노조활동을 하다가
87년이후 서울공장에서 평조합원으로 일하고있던 인물.
"회사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의식을 지닌 각공장내 반장들이 평소
합리적인 노동운동노선을 견지하고있던 강위원장을 옹립했다.
15대위원장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강위원장의 당선일성은
"회사는 조합원들의 의식수준만큼 발전하며 우리의 의식이 낡은 것일수록
회사의 장래는 어두워진다"는 것.
올해초 노조 중앙위원회를 소집한 강위원장은 "우선 우리의 과거를 반성
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보자"며 "노조에서 회사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독려했다.
지난 82년 회사창립이후 최초로 무교섭타결이 이뤄진 것은 이같은 배경
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조측은 이어 올해 단체협상도 회사측에 백지위임해버렸다.
노조측이 이처럼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회사측도 노조와 조합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 공장별로 "한마음협의회"를 구성, 임원들이 직접 근로자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고충을 해결하는데 앞장섰으며 각 공장별로 간담회를 열어
현장직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나갔다.
또 노조사무실에 컴퓨터 온라인 시스템을 설치, 회사경영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했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 4월10일 경북 문경새재에서 창사이래 처음으로 본사
및 4개공장의 2천여 임직원이 함께 모여 "2001년 비전달성과 노사화합을
위한 전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회사측은 이같은 분위기에 고무돼 지난 93년 7천8백억여원, 94년 8천
5백억여원, 95년 9천9백억여원등 완만하게 늘어나고있는 매출실적을 올해는
1조2천억여원으로 부쩍 늘려잡았다.
또 주력상품인 고순도다결정 실리콘, 고투자율 극박냉연강판, 스테인리스
실버스톤 도장강판, 용융알루미늄 도금강판, 분말야금용 순철분 등에 대한
품질향상과 함께 해외판로개척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조철형 인천공장장겸 공장총괄임원은 "회사가 이처럼 공격경영을 펼칠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노사화합의식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동부제강차원의 노사화합에 만족하지않고 전철강산업의 노사
화합분위기를 선도할 수있도록 모범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조공장장은 45년생으로 공교롭게도 강위원장과 동갑이며 입사연도도 각각
72년과 73년으로 비슷하다.
또 사장을 대표해 회사내 안전.환경.노무관리를 직접 챙기고있는 총괄
임원을 겸직하고있어 강위원장과는 한달에 두번꼴로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가깝다.
대화도 부드러울 수 밖에 없다.
"동부제강에 일단 들어온 사원은 평생 못떠나도록 할겁니다" 두사람의
장담에 동부제강의 밝은 미래가 엿보인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