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놀라 잠을 깰정도로 큰소리가 나면 일본에서는 지진이 난줄 알고
한국에서는 전쟁이 난줄 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전쟁공포대신 또 사고아니냐는 사고발생
불안에 떨게 되었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뒤 일어난 대형사고만 해도 구포열차사고, 아시아나
비행기추락사고,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등 이루다 헤알릴 수 없이 많다.

오죽하면 사고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중에서도 우리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취사나 난방에 이용하는 도시가스
의 누출사고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엄청난 위협을 줄수 있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

그 가공할 위험은 서울 아현동과 대구 지하철공사때의 도시가스 폭발사고
에서 충분히 알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 8일새벽 서울의 강남 서초, 강동 송파구등지에서 도시가스가
새어나오는 사고가 잇따라 부근 주민들이 긴급대피하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했다.

만일 이때 도시가스가 폭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생각만해도
끔직한 일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치미는
분노와 한심한 생각을 어쩔수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명에 갔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북한의 위협을 우리손으로 실현할뻔한
이마당에 월드컵경기를 유치했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통탄하는 심정은 원인규명및 재발방지 대책의 점검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정압기에 가스를 보내는 기계의 고장으로
기준압력보다 높게 가스가 공급돼 안전밸브가 자동으로 열리면서 가스가
새나갔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한 기계결함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는 서로 다른 8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시간이상 가스누출이 계속 됐는데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위기관리체제에 있다.

지난 94년에 일어난 아현동 가스폭발사고도 정압기가 설치된 가스중간기지
에서 가스가 새 일어났는데도 달라진게 없다.

그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던 가스공사와 가스안전공사 그리고
관련부처 공무원들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가스장비는 제때 점검했는가, 땅속에 묻힌 배관망은 파악됐는가, 가스관은
규격에 맞게 제조되며 매설공사는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는가.

세로보가 수없이 금간 당산철교위로는 오늘도 전철이 달리고 있고 부실공사
재발을 소리높여 다짐하는 가운데 얼마전에는 서해대교주탑이 무너졌다.

프로판가스통이 함부로 다뤄지고 음주운전이 단속을 비웃고 있다.

세계화는 영어를 잘하고 국제대회를 유치한다고 되느 것이 아니다.

규칙을 잘지키고 맡은바 책임을 다하며 사람목숨을 다른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길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내일은 또 어떤 사고가 날지 몰라 하루하루 마음졸이며 살아가는 시민들을
입에 발린 변명이나 구호대신 행동으로 안심시켜 줄수는 없는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