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신화건설회장(70)은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원로이며 해외건설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중동건설붐이 일던 지난 70년 신한기공건설을 설립한 이래26년동안
한 분야만을 고집,중견건설업체인 신화건설(도급순위 41위)을 일구어
냈다.

중동경기의 침체로 경남기업 고려개발등 굴지의 건설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는 부침을 지켜본 그는 92년 노령에도 불구, 해외건설협회부회장을
맡아 제2의 해외건설특수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회장은 26년 충남보령에서 태어나 46년 조선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후 잠시 상공부 전기국에 근무하다 건설업계에 투신했다.

68년 한국기계공업(주)부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업체를 창업,
기술자에서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올라 입지전적인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본인이 기술자출신이어서70년대 경제급성장기에도 건설업계라는
한우물에 우직하게 안전시공과 견실시공을 강조, 최근 잇따르고 있는
성수대교붕괴 삼풍백화점붕괴등의 대형건설재난에도 신화건설의
견실한 이미지를 지켜올수 있었다.

최근 이회장은 칠순나이에도 불구, 부실과 졸속시공이라는 건설업체의
불명예를 씻고해외건설의 이미지를높이기 위해 업계원로로서 아직 남은
일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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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희를 맞으셨는데 몹시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관리비결이라도 갖고계신지요.

<>이회장 = 바둑을 좋아하다보니 특별한 운동없이도 건강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골치 아플때 바둑 한수 두면 명약 몇첩을 먹은 것 처럼 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플때 바둑 한수 두고나면 명약 몇첩을 먹은것 처럼 개운해집니다.

바둑이 좋아 72년인가 73년에 문화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주최했던
프로아마대항전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지금은 케이블TV에 "지송배(이회장의 호)쟁탈아마최강전"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해외건설경기가 최근 동남아시장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외건설경기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이회장 = 동남아국가들의 개발속도가 예상외로 빨라졌고 또 단기간에
많은 물량을 건설하느라 자기힘으로 미처 못하는 부분이 많아 지금의
개발수요가 나타났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70년 후반상황이 그쪽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상당기간동안은 동남아와 중동의 특수상황으로 우리나라
해외건설특수는 계속되리라 봅니다.

-세계적으로 수주패턴이 단순수주에서 턴키베이스(일괄수주)
BOT(공사완공후 시설물을 일정기간 운영하고 반환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국내기업의 해외공사시 취약점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회장 = 우리의 주력시장인 동남아에서는 경쟁국이 일본입니다.

일본과 비교해서 일부 고도기술력을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건축
토목등에서는 근접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기업들은 국제금리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분야에서
취약점을 안고 있지요.

국내은행에서 돈을 빌릴 경우 이자부담이 많아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하루빨리 전문가들을 육성,파이낸싱능력을키워야 하겠습니다.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누적된 미분양아파트, 부실공사 문제.

이런 것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이회장 = 건설업체들이 국내에서는 사면초가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원리원칙대로 시간과 공을 들여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호시절에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추구하기보다 몸불리기에 급급했던
건설업계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정책의 일관성과국민의식도 바꿔야 합니다.

건설업을 운영하는 업자에게만 전가하기보다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건설업을 둘러싼 제반 문제점들을 풀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공동체의식을 언급하셨는데요 해외에서는 명성, 국내에서는 불명예가
사람의문제로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이회장 = 외국에서는 항상 잘 하는데 국내에 들어오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이는 건설업이 옛날의 오래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경영자 감리자 설계자 근로자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원리원칙보다는 적당히 처리하는게 의식속에 정착돼 있어 부실공사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건설은 사람이 하는것인데 하물며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제3국인들을
고용해 일을 하는 해외사업은 잘 되는데 국내에서는 왜 안됩니까.

성수대교붕괴에 많은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인 요인은 용접불량이라고
들었습니다.

용접은 고도의 기술이아니라 테크니션의 워크맨십을 요구하는 거지요.

-정부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원할 방법은 없나요.

<>이회장 = 건설업은 사람빼고는 남는 것이 없어요.

수백억원만 들이면 최첨단의 건설기계를 살수 있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문제가 인력수급문제에서 발생하고 있는 거지요.

관리책임이 사측에 있지만 근로의식이 변하지않으면 100명의 감독이
1명의 노동자를 통제할수 없습니다.

토목 건설 특히 플랜트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인건비가 비쌉니다.

그러나 일감에 비해 사람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력은 달리고 인건비는 비싼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근로자들은 양심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근로자들을 1백% 컨트롤하며 성실시공을
유도할수 있겠습니까.

정부는 건설업체의 이러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외국인력수입을 허용해야
합니다.

한달에 4백-5백만원을 고수입을 올리며 힘든 일을 마다하는데 왜
인력수입을 지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정부는 대형사고가 발생할때마다 업자들을 엄벌에 처해겠다는등
처벌위주로 일을 수습하려 하고 있습니다.

업체를 몰아부치기 이전에 이러한 업계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신화건설은 국내에서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등 중동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매출도 해외사업비중이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회장 = 자의반 타의반입니다.

신화건설처럼 해외건설을 시작한 20여년 동안 해외공사가 한번도
중단되적이 없는 회사는 드물지요.

불과 얼마전에는 해도 해외공사가 전체매상의 94%를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근래에는 해외공사와 국내공사가 50대 50선을 유지했습니다.

창사이래 플랜트분야만을 고집스레 고수한 것은 기술자시절 국내
플랜트분야를 외국기업이 독점해 국내기업은기술축척과 공사수행능력을
키울 길이 없었습니다.

돈벌어서 재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기술축척을 위해 플랜트를
우리가 직접 해봐야 겠다는 기술자적 오기에서 이 분야만 주력했습니다.

다행시 기업을 시작한 시점이 산업화정책이시작된 시점이어서 사업운도
따랐지요.

덕분에 기업도 번창하고 질적경험도 나아졌지요.

그러나 주고객이던 대기업들이 하나 둘씩 건설회사를 만들고부터는
일감이 주지않아 할수없이 커진 볼륨을 유지하기 위해 해외에 의존할수
밖에없었지요.

-직원중에서 20년이상된 장기근속자들이 다른 회사에 비해 유별나게
많은것도 해외의 명성과 무관하지 않는것 같은데요.

<>이회장 = 회사를 처음 창립하고 8년간 남자직원들의 이직율이
제로였습니다.

거짓말 같이 들리시겠지만 질병으로 그만둔 사람을 빼고는 옮겨간
사람이없었지요.

최근 들어서는 이직율이 늘어났지만 임원중에서 외부에서 스카웃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고부가가치 산업인 플랜트분야를 육성한다고 높은
직급과 월급으로 직원들을 빼가는 통에 이직율이 조금 늘어난거지요.

쓸만한 사람을 길러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타격이
큽니다.

-사람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시는데 이것을 인생관이나 경영철학과
같다고봐도 괜찮은지요.

<>이회장 = 건설업은 사람 빼고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요.

사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믿어서 손해보더라도 안 믿어서 손해보는 것보다는 적지요.

따라서 기업을 하는 동안 믿는 것을 정착시키는데 열을 다 했지요.

믿음은 사람이 만들수 있는 최상의 작품입니다.

직원을 믿지 못해 그 사람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해도 만약 그 직원이
제가 1백%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으로
봐요.

지금도 매달 한번씩 조회시간에 전직원을 모아 믿음과 화목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어요.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풍파도 많이 겪게 되는데 제일 어려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이회장 = 사업을 하다보면 산너머 산입니다.

산을 겨우 넘은 것같은데 앞에는 또 산이 있지요.

인생의 시련기는 처음 설립했던 회사를 남에게 잃은 것입니다.

기술자출신이다보니 지분이 뭔지 몰랐던 거지요.

동업자가 사장인 제가너무 인정에 매달리고 제도적으로 다스리지
못한다며 부사장으로 강등시키고 은행출신을 모아 현장과 사무실을
감사해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 회사를 빼앗아 갔지요.

그러나 지금도 신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어요.

물론 직원들은 권위로 다스리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경향이 강해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실망할때도 있었고 부대낄때도 있었지요.

그렇게 살다보니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으신 일은 없습니까.

<>이회장 = 특별히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일은 없고요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해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과 돈이 부족해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있고 해서하고 죽을지 못하고 죽을지 모르겠군요.

<대담 = 이진원 편집부 국장대우>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