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38) 제10부 정염과 질투의 계절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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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보채가 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서운해 하던 대옥이 방으로
들어서는 보옥을 보자 여간 반갑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들뜬 표정이 되어 슬쩍 농담을 던졌다.
"어디서 오시는 어옹이신가요?"
어옹은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 지금 갓과 도롱이를
쓰고 있는 보옥의 모습이 어옹을 닮아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동해에서 온 어옹이외다.
지금은 사람을 낚으러 왔소"
보옥이 농담을 받아 넘기며 빗물이 떨어지는 갓과 도롱이를 벗어
시녀에게 맡기고는 등불을 들고 대옥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오늘은 어때?얼굴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내 얼굴빛이야 하루 좋았다 하루 안 좋았다 변덕이 심하잖아요.
근데 갓과 도롱이는 비에 젖었는데 버선과 단화는 말짱하네요"
대옥이 보옥의 전신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보옥은 붉은 비단 웃옷에다가 초록 허리띠를 두르고 꽃무늬가 새겨진
푸른 비단 바지를 입고 있었다.
버선은 단을 금줄로 둘렀고 단화는 나비와 꽃이 수놓여 있었다.
"덧신을 신고 왔거든. 팥배나무로 만든 건데 그걸 신고 다니면 아무리
비가 와도 단화와 버선이 젖지 않지. 덧신은 바깥마루 처마 밑에다
벗어 놓았어"
보옥이 대옥이 시를 써놓은 종이를 집어들어 읽어 보았다.
비단 이불 덮어도 가을 바람은 파고들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폭포처럼 급한데 밤새도록 빗줄기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등불 앞에서
이별하는 두 남녀의 눈물인가 "누가 누구랑 이별하는 거지?"
보옥이 비씩 웃으며 대옥을 돌아보았다.
"아이, 몰라요"
대옥이 얼굴이 발개져서 보옥에게서 종이를 홱 나꿔채더니 등불에
태워버렸다.
"그렇게 해도 이미 내 머리속에 다 들어와 있는걸"
보옥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보란 듯이 대옥의 시를 암송해 나갔다.
가을 비바람 이다지도 몰아치니
창가에 어린 가을 꿈 깨어져 달아나네
추정을 가슴에 품고 잠 못 이루는 밤
병풍에 어른거리는 춧불도 눈물을 흘리는가
"가을 분위기를 잘 살린 멋진 시야. 대옥 누이 시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보옥이 진정으로 감탄하여 칭찬을 하였는데 대옥은 혹시 놀리는 말이
아닌가 하고 얼굴을 더욱 붉히기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
들어서는 보옥을 보자 여간 반갑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들뜬 표정이 되어 슬쩍 농담을 던졌다.
"어디서 오시는 어옹이신가요?"
어옹은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인데, 지금 갓과 도롱이를
쓰고 있는 보옥의 모습이 어옹을 닮아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동해에서 온 어옹이외다.
지금은 사람을 낚으러 왔소"
보옥이 농담을 받아 넘기며 빗물이 떨어지는 갓과 도롱이를 벗어
시녀에게 맡기고는 등불을 들고 대옥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오늘은 어때?얼굴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내 얼굴빛이야 하루 좋았다 하루 안 좋았다 변덕이 심하잖아요.
근데 갓과 도롱이는 비에 젖었는데 버선과 단화는 말짱하네요"
대옥이 보옥의 전신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보옥은 붉은 비단 웃옷에다가 초록 허리띠를 두르고 꽃무늬가 새겨진
푸른 비단 바지를 입고 있었다.
버선은 단을 금줄로 둘렀고 단화는 나비와 꽃이 수놓여 있었다.
"덧신을 신고 왔거든. 팥배나무로 만든 건데 그걸 신고 다니면 아무리
비가 와도 단화와 버선이 젖지 않지. 덧신은 바깥마루 처마 밑에다
벗어 놓았어"
보옥이 대옥이 시를 써놓은 종이를 집어들어 읽어 보았다.
비단 이불 덮어도 가을 바람은 파고들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폭포처럼 급한데 밤새도록 빗줄기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등불 앞에서
이별하는 두 남녀의 눈물인가 "누가 누구랑 이별하는 거지?"
보옥이 비씩 웃으며 대옥을 돌아보았다.
"아이, 몰라요"
대옥이 얼굴이 발개져서 보옥에게서 종이를 홱 나꿔채더니 등불에
태워버렸다.
"그렇게 해도 이미 내 머리속에 다 들어와 있는걸"
보옥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보란 듯이 대옥의 시를 암송해 나갔다.
가을 비바람 이다지도 몰아치니
창가에 어린 가을 꿈 깨어져 달아나네
추정을 가슴에 품고 잠 못 이루는 밤
병풍에 어른거리는 춧불도 눈물을 흘리는가
"가을 분위기를 잘 살린 멋진 시야. 대옥 누이 시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보옥이 진정으로 감탄하여 칭찬을 하였는데 대옥은 혹시 놀리는 말이
아닌가 하고 얼굴을 더욱 붉히기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