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선 ''사무실 파괴'' 바람이 거세다.

경영부문에서 시작된 리스트럭처링 열기가 사무실에까지 번지고 있는것.

상의하달식조직에 맞춰 설계된 사무실에서는 제아무리 신경영을 해봤자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현재 미 기업의 83%(미 국제시설경영협회 조사)가 ''새술은 새부대에
담자''는 기치아래 21세기형 사무실 갖추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 알루미늄업체 알코아에는 최고경영자(CEO)방이 따로 없다.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탁 트인 홀에 책상과 사무기기들만 놓여있다.

''벽''이나 ''문''은 이제 이 회사에선 낯선 단어가 돼 버렸다.

회의가 있을때는 ''커뮤니케이션 센터''에 모인다.

물론 여기도 별도의 방은 아니다.

주변에 TV와 팩스, 신문, 회의용 탁자가 있을 뿐이다.

함께 모여 일하는 팀제의 활성화에는 이런 사무실이 제격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부엌이 딸려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CEO인 폴 오닐은 부엌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데워 먹으며
즐겁게 회의를 이끌어 나간다.

"마치 집 식탁에 둘러 앉은 기분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각자의
생각을 토론할수 있다"는게 오닐이 내세우는 생각이다.

광고대행사 팰론 맥엘리고트의 21세기형 사무실 개념의 핵심은
''움직이는 책상''이다.

아이디어 회의때가 되면 아트디렉터 광고기획담당자(AE) 등 회의참석자들은
개인용 컴퓨터파일 전화 등을 그대로 올려 놓은채 바퀴달린 책상을 밀고
회의장소로 모여든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기업에서는 이런 방법이 최상"이라고 롭 화이트
기획국장은 자랑한다.

''호텔식 사무실''도 있다.

사무실에 붙어있기보다는 직접 발로 뛰는 세일즈맨 등이 늘어나면서 생긴
신풍속도이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언스트&영의 워싱턴지점이 대표적인 예.

이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하거나 주로 외근하는 직원들에 대해 고정된
공간을 없애고 ''사무실 예약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직원이 워싱턴 지점으로 전화를 걸어 개인암호와 사무실 및
워크스테이션 사용 희망 날짜를 얘기하면 30초안에 사용가능 여부를
알려준다.

여기에는 일반 호텔처럼 ''손님''을 뒷바라지해 주는 관리인이 있다.

직원들이 도착하면 배정된방에는 이름표가 걸려있고 필요한 모든 물품이
준비돼 있다.

심지어 해당직원의 자녀 사진을 컴퓨터초기화면에 띄워놓기도 한다.

세계 최대컴퓨터업체 IBM에도 호텔식사무실을 이용하는 직원이 2만명을
헤아린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IBM은 이 제도를 도입해 14억달러의
부동산지출을 줄였다.

사무용 가구업체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21세기형 사무가구 개발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틸 케이스사가 내놓은 길다란 원통형 개인방 ''퍼스널 하버'' (개인용
항구)는 첨단디자인의 극치를 보여주는 제품.

겉보기엔 좁아보이지만 내부는 컴퓨터세트와 전화, 파일서랍등 1인용
사무기기가 모두 들어갈 만큼 충분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제품의 하이라이트는 볼록렌즈 형태의 문이 열렸을때.

퍼스널 하버는 서로 유기적으로 배치돼 있어 문만 열면 그대로 회의장이
돼버린다.

회의참석자들은 문을 열고 ''회의장으로 들어왔다가 담당분야의 토의가
끝나면 곧장 퍼스털 하버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열린''공간과 ''닫힌''공간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

''21세기형 사무실''의 기본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나 ''일 할 수 있는
유연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정리하고 있다.

인텔 휴렛팩커드등 이미 ''벽없는 사무실''을 도입한 첨단업체들까지도
효율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사무실 리스트럭처링 아이디어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 소프트웨어(경영) 리스트럭처링만으로 만병을 치유하던 때는 지났다.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맞춰 하드웨어(사무실)까지 완전히 뜯어고치는
''토털리스트럭처링''의 시대가 온 것이다.

< 노혜령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