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컴퓨터] 강경식 <국회의원/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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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장관을 지낸 강경식의원(60.신한국당)의 서재는 컴퓨터다.
강의원이 10년쯤전부터 애기로 다루고 있는 노트북은 자료보고이자
글을 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강의원은 어디를 가더라도 한 손에는 꼭 노트북을 챙긴다.
국회상임위가 열릴때는 정부측의 보고내용을 노트북에 담아두거나
질문할 요지를 정리해둔다.
말하자면 강의원은 이동서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강의원이 노트북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문명의 이기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강의원은 89년초부터 노트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2대의원을 지내고 13대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한후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은 들어오는데 원고지에 썼다 고쳤다하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 틈날때마다 자료를 입력시켰다가 원고청탁이 들어오면 간단히
손질만하고 글을 지었다.
"한순간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
강의원이 노트북으로 원고를 작성하면서 깨달은 감상이다.
강의원이 노트북을 지갑챙기듯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생각이 떠오를때마다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물론 지역구에 관한 정보도 그의 노트북에 빽빽이 정리돼 있다.
강의원은 누구의 도움없이 워드프로세서를 배웠다.
애써 모은 자료를 키조작 잘못으로 모두 날려버렸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는 오히려 훌륭한 스승이 돼 지금은 원고작성에서
팩스모뎀을 이용, 전송하는 작업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강의원은 지난2월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 홈페이지
(http://www.ik.co.kr/kang)를 개설했다.
나우누리 천리안(go kang)등에 자신의 방을 만든지는 더 오래 됐다.
강의원은 인터넷등에 자신의 기고문,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가경영
전략연구원 부산시발전시스템연구소의 연구활동, 의정활동내용등의 자료를
깔아놓고 있다.
강의원이 적극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정보화에 대한 눈을
남보다 일찍 떴기때문이라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강의원은 지난62년 재무부 사무관시절 미국 시라큐스대학에 유학중
전산화 과목이 개설돼 있던 시라큐스대 맥스웰대학원에 정식 학생으로
등록,컴퓨터와 접하게 됐다.
"신식교육"을 받고 돌아온 강의원은 홍릉 KIST와 광화문에 있던
경제기획원간에 전산시스템을 연결, 관청에 첫 터미널을 설치하는
주역을 맡았었다.
강의원은 재무장관시절인 82년 이철희-장영자사건이 터지자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구상을 했다.
실명제실시의 기본전제인 금융전산화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원은 요즘 CD롬 타이틀에 담긴 정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백과사전 타이틀을 주로 보고 바둑 타이틀에도 손이 간다.
강의원이 "컴맹"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다.
"알면 편한데."
<김호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
강의원이 10년쯤전부터 애기로 다루고 있는 노트북은 자료보고이자
글을 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강의원은 어디를 가더라도 한 손에는 꼭 노트북을 챙긴다.
국회상임위가 열릴때는 정부측의 보고내용을 노트북에 담아두거나
질문할 요지를 정리해둔다.
말하자면 강의원은 이동서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강의원이 노트북을 사용하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문명의 이기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강의원은 89년초부터 노트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2대의원을 지내고 13대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한후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은 들어오는데 원고지에 썼다 고쳤다하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 틈날때마다 자료를 입력시켰다가 원고청탁이 들어오면 간단히
손질만하고 글을 지었다.
"한순간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
강의원이 노트북으로 원고를 작성하면서 깨달은 감상이다.
강의원이 노트북을 지갑챙기듯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생각이 떠오를때마다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물론 지역구에 관한 정보도 그의 노트북에 빽빽이 정리돼 있다.
강의원은 누구의 도움없이 워드프로세서를 배웠다.
애써 모은 자료를 키조작 잘못으로 모두 날려버렸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는 오히려 훌륭한 스승이 돼 지금은 원고작성에서
팩스모뎀을 이용, 전송하는 작업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강의원은 지난2월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 홈페이지
(http://www.ik.co.kr/kang)를 개설했다.
나우누리 천리안(go kang)등에 자신의 방을 만든지는 더 오래 됐다.
강의원은 인터넷등에 자신의 기고문,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가경영
전략연구원 부산시발전시스템연구소의 연구활동, 의정활동내용등의 자료를
깔아놓고 있다.
강의원이 적극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정보화에 대한 눈을
남보다 일찍 떴기때문이라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강의원은 지난62년 재무부 사무관시절 미국 시라큐스대학에 유학중
전산화 과목이 개설돼 있던 시라큐스대 맥스웰대학원에 정식 학생으로
등록,컴퓨터와 접하게 됐다.
"신식교육"을 받고 돌아온 강의원은 홍릉 KIST와 광화문에 있던
경제기획원간에 전산시스템을 연결, 관청에 첫 터미널을 설치하는
주역을 맡았었다.
강의원은 재무장관시절인 82년 이철희-장영자사건이 터지자 금융실명제를
도입할 구상을 했다.
실명제실시의 기본전제인 금융전산화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원은 요즘 CD롬 타이틀에 담긴 정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백과사전 타이틀을 주로 보고 바둑 타이틀에도 손이 간다.
강의원이 "컴맹"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다.
"알면 편한데."
<김호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