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역 및 작고작가들의 순위를 매긴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미술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월간미술" 5월호가 미술계의 영향력있는 인사 100명을 대상으로
현역작가 및 원로.작고작가중 대표작가, 장르별로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가, 한국미술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작가 등을 조사한 설문결과를
발표하자 많은 미술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설문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미술계 인사들은 각 분야에서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다수 작가들을 외면한채 자의적인 순위 매김을
시도한 이번 조사는 미술계를 단색으로 도배질하려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하고 우리미술계를 획일화.경직화 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미술평론가 하용석씨는 다른 미술잡지인 "미술세계"에 "미술판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고를 통해 이번 설문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씨는 무엇보다 예술행위에대해 순위를 매긴다는 생각부터가 모순이라고
밝히고 이는 상업주의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잘못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할수 없다고
말하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중 많은 사람들이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채 후대에 이름을 떨친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령별 대표작가를 뽑은 설문과 관련, 미술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나이를 가지고 한작가의 예술성과 작품세계를 평가한 근거는 찾아볼수
없다고 덧붙이고 조건과 환경이 다른 국내작가와 해외작가를 뭉뚱그려
평가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미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를 묻는 항목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여기서 의도하는 영향력이라는 것이
정치력인지 인맥인지 학연인지 분명치 않으며 설문의 의도 또한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르별로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가를 묻는 항목에 대해서도 우선
장르의 해체와 파괴가 진행된지 오래된 시점에서 무리하게 장르별 응답을
고집하는 것은 미술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며 작품성이라는것
자체도 객관화된 기준이 없는만큼 보다 구체화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가장 중요한 전시회와 좋지않은 전시회" "과대평가된 작가와
과소평가된 작가" 등도 분명한 증거나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모하게 알려진다면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수 있어 신중함을
보였어야 했다고 역설했다.

미술관계자들은 "독일의 한 잡지에서도 매년 세계적인 작가들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지만 순위매김의 부당성을 스스로 밝히면서 철저하게 객관화된
자료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조사의 의도가 무엇이든 미술계에
유무형의 영향을 미칠수 있는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백창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