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낙선재 복원 완료 .. 이달중 재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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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가 4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빠르면 이달중으로
시민들에게 다시 선보인다.
낙선재는 조선조 헌종 12년 (1846년)에 후궁들을 위해 건립됐으며
고종과 순종이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해방후에는 조선조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여사가 영친왕과 함께 귀국해 지난 89년까지 기거했던 곳.
이제 낙선재는 안사랑채격인 석복헌, 세자의 생활공간으로 덕혜옹주가
사용했던수강재,별당인 한정당 등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이 됐다.
낙선재는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아 낡고 부식이 심한데다 왜색풍으로
증개축되는 등 문화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92년 10월5일
보수공사에 들어가최근 마무리됐다.
낙선재 전체면적 4천5백평과 고건물 17동에 대한 보수공사 비용으로
총 15억9천4만원이 들었다.
낙선재의 고궁들은 기와를 교체하고 고증을 토대로 건물 구조를
바꾸는 등 원래대로 복원했다.
특히 수강재의 경우 내부에 있는 부엌을 임의로 개조해 만들어놓은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탕을 철거했으며 부근 우물주변의 시멘트 콘크리트
역시 얇은 판석으로 갈았다.
또 일본식 건물인 신관과 창고 2동, 이방자 여사가 내방객을 만났던
안내실과 장독대 등도 해체했다.
시멘트로 만든 경계담장도 헐어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이와함께 회양목을 비롯한 일본수종을 모두 뽑아내고 대신 매화나무
등을 심는 등 왜색 분위기를 말끔히 씻어냈다.
한편 이씨대동종약원은 이여사의 외아들 이구씨 (일본 거주)가
낙선재에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문화재관리국은
전기와 수도공급이 중단되는 등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1일자).
시민들에게 다시 선보인다.
낙선재는 조선조 헌종 12년 (1846년)에 후궁들을 위해 건립됐으며
고종과 순종이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해방후에는 조선조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여사가 영친왕과 함께 귀국해 지난 89년까지 기거했던 곳.
이제 낙선재는 안사랑채격인 석복헌, 세자의 생활공간으로 덕혜옹주가
사용했던수강재,별당인 한정당 등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이 됐다.
낙선재는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아 낡고 부식이 심한데다 왜색풍으로
증개축되는 등 문화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92년 10월5일
보수공사에 들어가최근 마무리됐다.
낙선재 전체면적 4천5백평과 고건물 17동에 대한 보수공사 비용으로
총 15억9천4만원이 들었다.
낙선재의 고궁들은 기와를 교체하고 고증을 토대로 건물 구조를
바꾸는 등 원래대로 복원했다.
특히 수강재의 경우 내부에 있는 부엌을 임의로 개조해 만들어놓은
수세식 화장실과 목욕탕을 철거했으며 부근 우물주변의 시멘트 콘크리트
역시 얇은 판석으로 갈았다.
또 일본식 건물인 신관과 창고 2동, 이방자 여사가 내방객을 만났던
안내실과 장독대 등도 해체했다.
시멘트로 만든 경계담장도 헐어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이와함께 회양목을 비롯한 일본수종을 모두 뽑아내고 대신 매화나무
등을 심는 등 왜색 분위기를 말끔히 씻어냈다.
한편 이씨대동종약원은 이여사의 외아들 이구씨 (일본 거주)가
낙선재에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문화재관리국은
전기와 수도공급이 중단되는 등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