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세계 최대 여행 정보 사이트에서 한국 여행 중 해야 할 단 한 가지로 ‘서울 지하철 타기’가 선정된 적이 있다. 서울 지하철은 규모와 시설, 서비스에서 세계 일류로 평가받지만, 결제의 편리성만큼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신용카드로 승차하려면 국내 교통카드 전용 규격(PayOn)을 갖춰야 하는데 해외 발급 신용카드에는 적용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일회권 교통카드 구입과 선불 교통카드 충전 역시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비자·마스터 등 글로벌 신용카드가 K지하철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캐시리스 시대의 도래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신용카드가 교통카드를 대체한 지 오래다. 별도의 현지 교통카드나 승차권, 기능 적용 없이 소지한 신용카드만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오픈 루프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디지털 전환이 훨씬 뒤처진 일본을 비롯해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미 오픈 루프 도입이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노점상에서도 카드 결제가 되는 ‘신용카드 강국’ 한국에서 왜 유독 지하철만 교통카드를 고집하고 있을까. 오픈 루프는 국제 카드망과 국내 교통 결제망의 호환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선 기존 교통카드 단말기를 국제 규격인 EMV(Europay·Mastercard·Visa) 방식으로 개량 또는 교체해야 하는데,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결제망이 갖춰지더라도 또 다른 난제가 있다. 통합환승할인제도를 반영한 정산 시스템 구축이다. 지방자치단체·교통카드사·신용카드사·대중교통 운영사 간 첨예한 이해
과거 독일은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였다. 1930년대 초까지 독일은 노벨상 자연과학 부문에서 세계 최다 수상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1933년 나치 정부가 들어선 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대계 과학자들은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대거 망명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1958년에는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가 총 36명으로 늘어나 독일(33명)을 추월했다.독일 과학기술이 옛 명성을 잃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나치 과학자들을 입국시키는 작전명 ‘페이퍼클립(operation paperclip)’을 가동했다. 이 작전으로 나치 과학자 1600여 명이 미국으로 건너갔고 항공우주기술 등에서 소련을 압도하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다.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핵심 인재 영입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대표 테크기업 화웨이는 기존 급여의 최대 세 배를 제시하며 인재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기업 마이크론 역시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경력직 면접을 진행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해 미국 고급 인력 취업 이민 비자인 EB-1·2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5600여 명으로 인도, 중국, 브라질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 10만 명당 비자 발급 인원은 인도보다 10배가량 많은 10.98명으로 우리나라가 단연 으뜸이다.한국 인재가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이유로 열악한 처우를 꼽는다. 연봉은 낮고 성장 가능성도 낮아 한국에 남아 있을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의대 쏠림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의사의 고소득과 직업 안정성에 이끌려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너도나도 의대를 선택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인재 양
미국이 인공지능(AI)산업의 패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 5000억달러(약 719조원)를 투입한다는 소식이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 글로벌 소프트웨어 분야 2위 회사인 오라클이 출자해 ‘스타게이트’라는 이름의 AI 인프라 회사를 설립한다. 여기에 기술 파트너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 ARM이 가세한다. 말 그대로 ‘글로벌 드림팀’이다.스타게이트는 1년 전 오픈AI와 MS가 기업 단위에서 구상한 프로젝트다. 데이터센터 등 AI산업을 키울 인프라를 대규모로 조성해 빅테크에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세하면서 초기 구상보다 투자액이 다섯 배가량 늘었고, 참여 대상도 일본, 영국 기업으로 확대됐다. 1940년대 초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공이 다른 다국적 전문가 12만 명을 미국으로 불러 모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미래 산업의 근간인 AI 분야에서만큼은 중국 등 경쟁국에 추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손 회장이 신설법인 스타게이트 이사회 의장직을 맡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이 자국 기업만 골라 키우는 배타적인 ‘트럼프 서클’을 뚫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이틀이 지나도록 전화 통화 한 번 못 한 한국 입장에선 부럽기만 한 대목이다.‘졸면 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글로벌 산업과 정치 지형도가 휙휙 바뀌고 있지만, 우리 정치권의 위기의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이 2주 만에 국회에서 만나 반도체특별법 등 현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반도체특별법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