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일자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에 한 여성이 기고한 칼럼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 온 자신의 딸이 일본에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칼럼의 필자는 여성고용에 대한 정부내 실무책임자
격인 노동성 부인국장이었다.

노동성 고위간부의 이런 "사연"은 일본의 여성인력 활용실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일본 국회는 최근 우수 여성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을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달러화로 공부한 고급 여성인력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일본 국회의 이같은 행동은 해외유학파 여성들이 본국에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예 현지에 주저앉는 경우가 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웅변해 주고 있다.

일본의 여성고용 사정은 사실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한국보다 뒤진 면도 있다.

우선 일본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0.2%(94년 현재)로 한국의 47.9%와
비슷하다.

제조업 여성인력의 남성(100기준)대비 임금수준은 한국이 50정도지만
일본은 40선을 겨우 넘을 뿐이다.

여성은 "사무실의 꽃"이며 결혼을 하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한국이상으로 깊다.

특히 일본에선 남녀차별이 제도화 돼 있다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일본기업들은 사원을 일반직과 종합직으로 나눔으로써 "드러내 놓고"
남녀를 차별하고 있다.

코스별 관리로 불리는 이 고용제도는 "여성은 일반직, 남성은 종합직"으로
분류해 임금이나 승진등에서 차등을 두고 있다.

실제 하는 일엔 큰 차이가 없지만 종합직은 지방 전출등을 가도록 돼
있어 여성들이 원천적으로 지원하기 힘들게 해 놓았다.

따라서 종합직엔 대부분 남성이 몰려있고 여성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일반직을 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종합직이 일반직보다 임금도 많고 승진도 빠르다.

예를 들어보자.

종합식품회사인 교쿠요사의 경우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종합직이
월19만5,000엔이지만 일반직은 17만6,000엔에 그친다.

2만엔(약16만원)정도의 차이가 난다.

이 격차는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더 커진다.

미쓰비시은행에선 대졸 4년차가 되면 종합직과 일반직의 연봉이 43만엔
(약 340만원)까지 벌어진다.

또 종합직은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는데 반해 일반직은 임원승진이
원천봉쇄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직장내 성차별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 스스로도 그렇다.

도쿄 미쓰비시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우시다(우전.24)양은 자기 스스로
일반직을 선택했기 때문에 "코스별 관리제도가 성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2년제인 단기대학을 졸업하고 이 은행에 입사한 그녀는 "결혼하면 은행을
그만 둘 생각이어서 굳이 종합직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우시다양은 오히려 여성이 결혼후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갖고 있다.

"결혼하고도 은행에 다니면 후배들이 들어올 자리가 그만큼 줄어
들잖아요.

결혼후 직장생활을 병행하는게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러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도 저는 자리를 내 주고 싶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집단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에다 구조적으로도 여성들이 결혼후 일터를 떠나지 않을 수 없도록
돼 있다.

근본 원인은 일본의 전통적인 고용관행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일본 기업에선 종신고용관행이 일반적이다.

물론 연공서열이 중시된다.

회사를 옮기면 그만큼 불이익을 받는 탓에 전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본 근로자들이 야간잔업이나 지방전근 등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관행 자체가 여성들에게 악조건이다.

또 남성들이 이렇게 고된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여성들은 가정을 지키는게
묵계처럼 내려오고 있다" (동양대학 노부코 나가세교수)

그러나 일본이라고 남녀차별의 "영원한 고도"일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시작됐다.

최근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강화되고 지난 92년 제정된 육아휴업법이
육아.개호휴업법으로 개선되면서 이미 "바뀌고" 있는 회사도 적지 않다.

"과건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여직원들이 결혼후 직장을 그만
두었지요.

하지만 최근엔 주부사원이 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제를 이용해 아이를 낳고도 회사를 계속 다니는 여직원들도
많아요.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요즘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히타치 맥스웰사 타니자키 업무부주임)

일본내 3개 슈퍼마켓 체인회사들이 공동출자해 설립한 무역업체인
아이크사 마루야마 겐지 인사실장은 "본사 여사원 90명중 10명이 종합직"
이라며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남자고 여자고 코스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회사도 직원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별하기 보다는 유능한
사람을 더 많이 활용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위주의 고용관행과 사회적 속박에 갇혀 있던 일본의 여성들이
"일할 권리"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와 기업도 여성고용 시스템이나 인프라를 정비하고 그들을 일터로
끌어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제 문제는 여성들을 가정의 울타리에 묶어 놓았던 일본 사회의 가치관이
얼마나 빨리 바뀌느냐 하는 것이다.

< 도쿄 차병석 기자
이용만 LG경제연 책임연구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