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정책들이 발표되자 마자 부처간의 입씨름으로 표류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각 부처가 관계부처간 협의도 마치지 않은 ''설익은'' 정책들을 잇달아
내놓기 때문이다.

부처간 협의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거나 한쪽의 반대의견
을 무릅쓰고 단독발표하는 ''생색용 정책''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한 부처가 ''정책''을 발표하면 다른 부처가 곧바로 반대입장을
표시, 정책이 허황된 구호로 그쳐 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가지 사안을 둘러싸고 두 부처가 자기주장만을 고집, 몇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부처이기주의" 현상도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제계에선 대대적으로 발표한 시책이 곧바로 부인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장기구상을 세우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최근에 빚어진 혼선사례들을 정리한다.

<>호텔 상업차관 도입=문체부는 11일 관광산업 육성대책의 일환으로 관광
호텔등 숙박시설을 신축할때 신축자금으로 상업차관을 도입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2일 재경원 관계자는 "그 사안에 대해선 이미 문체부에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며 "재경원 입장에선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체부는 호텔에 대한 상업차관 허용을 골자로 하는 "관광숙박시설지원
특별법"을 제정.협의하는 과정에서 재경원으로부터 "안된다"는 입장을
통보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원측은 "호텔신축자금에 상업차관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현금차관을
도입해 준다는 뜻"이라며 "지금도 사회간접자본등 일부 시설재도입에 한해
허용되고 공장시설재도입도 상업차관을 쓸수없는 마당에 현금차관은 말도
안된다"고 밝혔다.

재경원은 입법예고 기간중 문체부를 설득, 불가방침을 관철할 방침이다.

<>수도권 공장증설=경쟁력 강화차원에서 행쇄위가 모처럼 규제완화 의지를
갖고 발표한 "수도권 첨단공장 증설" 방침은 발표 하룻만에 건교부의 반발에
부딪혔다.

행쇄위는 업계의 의견을 수렴, 대기업이라도 첨단업종에 한해선 수도권내
공장증설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건교부는 "수도권내 주택공급과
용수수요, 교통문제등이 한계에 달한 점을 고려할때 공장신설은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행쇄위는 규제완화 방침을 결정하기에 앞서 소관부처와의 협의절차를
거치는게 보통이어서 이번처럼 행쇄위 결정에 일선부처가 즉각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지방소비세 신설=내무부는 지난달 22일 "지방재정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지방교부세의 법정교부율을 올리고 <>지방소비세를 새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이튿날 재경원은 "세원관리 주무부처인 재경원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안을 내놓을수 있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재경원은 내무부안이 중앙재정을 위축시키고 세원을 이원화시켜 조세체계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만큼 절대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소세와 수입선다변화=재경원과 통산부는 벌써 몇달째 이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중이다.

특소세에 대해선 재경원이 세수확보 차원에서 추가폐지가 어렵다는 입장인
반면 통산부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사치품이 아닌 일반공산품에
대한 특소세 부과는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산부는 "이미 생필품이 돼버린 설탕이나 TV, 냉장고등에 특소세를 매기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재경원측을 공박하고 있고 재경원은 "그렇다면 대체
세원은 어디서 구할거냐"며 맞서고 있다.

수입선다변화도 재경원은 공산품가격안정을 위해 조기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통산부는 대일적자 심화와 국내업계의 경쟁력상실을 우려,
해제시기를 앞당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