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여행을 하는 경우 태극기를 보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비로소 자신이 대한민국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필자는 전혀 다른 사실에서 대단한 감격을 느껴 본 경험이
있다.

난생 처음 뉴욕의 존에프케네디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중에
포니엑셀승용차를 보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다섯살바기 아들 녀석이
"아빠, 포니엑셀이다"라고 소리지르는 순간, 벅차오르는 자긍심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에 젖었던 것이다.

그때 필자는 최근들어 골프클럽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칼스버드로 여행하였다.

근처의 오션사이드라는 자그만 도시에 있는 프라이빗클럽에 들러
골프를 하게 되었다.

골프가 끝나고 프로숍에 들러 친지들에게 주려고 클럽의 레고가
새겨져 있는 모자를 고르고 있었다.

종업원이 내보이는 좋은 물건이 모두가 "메이드 인 코리아"인 사실에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요즘 시중에서는 티타늄클럽 붐이 일고 있다.

눈뜨고 일어나면 최고의 클럽이 새로이 탄생하였다며 골퍼들을
유혹하는 골프상들의 광고를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으레 필자를 아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도대체 어떤 클럽이
좋은 것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진실을 말하자면 필자로서도 클럽마다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주 뜻밖에도 외제골프클럽을 수입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시중의 골프클럽의 기능은 거의 비슷한데 다만 어떤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파고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골프클럽제조회사들의 한결같은 고민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는 특히 국산골프클럽이 외제 골프클럽에 비교하여 비하자세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말에 왜곡됨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골퍼들이 우리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임은 자타가 인정할 것이다.

그런 골퍼들이 사용하는 골프클럽이 온통 외제이거나 그것도 수입이
금지되어 있는 일본제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찝찝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필자의 골프클럽도 미국제임에 더욱 씁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