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정치실험인 러시아대통령선거는 지금까지 주로 서방언론의 프림즘을
통해 밖으로 전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친서방 옐친정부와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정보를 서방언론들은 다시 자기
시각으로 굴절시켜 보도해온 것이다.

미국과 유럽등 서방국들은 옐친의 재집권을 "가능이 아닌 당위"로 보고
있고 서방언론들도 이를 전제로 선거정국을 바라보고 있는게 사실이다.

실제로 서방국의 지도자들은 노골적인 옐친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주가노프 러시아공산당당수가 친서방외교를 펴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때
콜총리가 면회를 거부한게 단적인 예다.

이런 서방의 입장과 시각에 대해 러시아내 정세분석가들의 반론도 적지
않다.

러시아노총의 보리스 카갈리스키 위원장자문관(38)이 바로 이같은 반론을
제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다.

모스크바대학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과거 브레제네프정권하에서 반공산주의
활동으로 투옥된 경험이 있다.

소비에트 붕괴시점에는 모스크바시원원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가도 했다.

국내에서 지난 88년 출간된 "생각하는 갈대"등 다수의 저서로 그는 영국
정부가 우수해외저자에게 수여하는 아이자크 도이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리스 카갈리스키 러시아 노총위원장 자문관이 본지에 기고한 러시아대선
을 보는 시각을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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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모스크바의 거리는 옐친 대통령의 초상화 물결이
넘쳐 흐르고 있다.

주요언론은 여론조사에서 옐친이 공산당당수 주가노프후보를 10~15% 앞서
있다고 보도하면서 그의 승리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론조사결과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특히 지난 2일 실시된 페테르스부르그 시장선거에서 현직시장이었던
아나톨리 소브체크후보가 부시장출신 블라디미르 야코블레프에게 패함에
따라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더욱 떨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선거막판까지 소브체크후보가 10%정도 앞섰으나 결과는
오히려 역전됐기 때문이다.

러시아내 정세분석가들 사이에서는 1차투표에서 주가노프와 옐친이 각각
42~45%, 25~27%를 득표해 2차투표까지 간 다음 최종적으로 주가노프가 55~
60% 득표로 승리한다는 예상이 우세하다.

아무튼 두 후보는 서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지만 문제는 선거후유증이다.

두 후보의 지금까지 선거운동을 봐서는 큰 후유증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옐친의 선거운동전략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유권자에게 직접 다가가 각종 선심공약을 쏟아 붇는 동시에 서구식
광고기법을 동원해 옐친개인을 우상화하는 전략을 즐겨 쓰고 있다.

가장 유효한 선거전략은 일반대중의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것.

하지만 옐친의 수많은 장미빛 공약들이 모두 추진된다면 러시아경제는
파산한다.

산업생산은 급격히 위축되고, 루블화는 다시 폭락세로 돌아섰다.

많은 근로자들의 월급여는 1백달러이하로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친다.

그나마 제때 지급되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옐친의 전국순회유세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출현하는 곳마다 불만만 노출될 뿐이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심지어 친정부성향의 유권자들조차 옐친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봉쇄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옐친은 최근 오는 2000년이후에는 징병제를 폐지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2000년쯤 군대에 가야할 청년 유권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공약이다.

그러나 2000년이후는 차기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다.

결국 옐친은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물불가리지 않고 일단 공약을 내놓은
다음 나중에 지키기 않더라도 무방하다는 계산이다.

옐친은 또 이번 선거의 최대쟁점중 하나인 체첸사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물론 이 장담도 허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옐친이 진정으로 체첸사태의 해결의지가 있다면 크렘린의 꼭두각시인
도쿠 자브가예프 체첸정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체첸은 러시아 대형석유회사와가스회사들의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는 지역이다.

자브가예프정부는 이 이익을 실현시켜 주는 핵심연결고리다.

크렘린안에는 블라디미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등 대형석유회사와 가스회사
로부터 지원을 받는 인물들이 가득차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러시아의 지식층들은 옐친대통령이 체첸사태를 해결
하려는 의지는 물론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옐친후보진영은 선심선거공약이 논리적 허점 때문에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레드 컴플렉스"를 끄집어 내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관영TV들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주가노프가 집권하면 록음악과 디스코를
금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이 많은 유권자들에게는 공산정부출범이후 해외여행이 금지되고 살인적인
물가고에다 식량난이 재연될 것으로 위협하고 있다.

옐친진영은 TV를 통한 이같은 상대비방전의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 주로
인기연예인과 유명문인들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맞서 주가노프진영은 과격이미지 탈피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가노프의 경제공약을 분석해 보면 그 뼈대는 케인즈경제학을 바탕을
두고 있다.

민간부분의 재국유화공약을 두고 공산주의적 정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현 러시아정부내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러시아경제개혁의 이론적 기초를제공한 미하바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조차도 "독점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러시아선거정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집권을 위해서는 초헌법적
수단까지 강구할 수 도 있다는 옐친진영의 태도에 있다.

친정부성향의 신문에서도이번 선거가 부정.과열선거로 얼룩져 있는 것으로
보도한다.

체첸유혈진압의 장본인인 쿨리코프장군은 "선거결과에 따라서는 유혈내전이
올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실제로 국경수비를 맡고 있는 야전부대가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도시로
이동하는 등 군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러시아정국은 현재 안개속의 지뢰밭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