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인의 처소에 당도하여 형부인이 희봉더러 대부인에게로 먼저
나아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희봉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원앙의 마음을 떠보기 전에는 할머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그러니까 그냥 들어가서 문안 인사만 드리고 있어.

내가 원앙의 마음을 떠본 연후에 들어갈 테니 눈치껏 말장단을 맞춰
달란 말이야"

"그야 어렵지 않지만, 나도 아예 원앙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난 후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 어머님이 먼저 할머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나서 원앙에게로
가 마음을 떠보세요.

그리고 그 결과를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할머님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계책이 설 것
아니에요?

저는 평아랑 다른 방에서 기다리겠어요"

형부인이 듣고 보니 희봉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형부인은 대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뒷문으로 나와 원앙의
방으로 들어갔다.

원앙은 방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형부인이 들어오자 바느질감을
손에 든 채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바느질을 하고 있었구나.

어디 보자, 솜씨가 점점 느는구나.

이제 시집을 가도 되겠어"

형부인은 일단 원앙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해주고 나서 원앙의 표정과
몸매를 훑어보았다.

원앙은 조금 낡은 연분홍 비단 저고리에 푸른 빛이 도는 비단 마고자를
걸치고 아래로는 옅은 초록치마를 입고 있었다.

봉요, 즉 벌의 허리처럼 잘록하고 날씬한 허리, 둥그스름하여 탐스러운
어깨, 거위알처럼 희고 갸름한 얼굴, 까맣게 윤기가 나는 머리카락,
오똑한 콧날, 두서너 점의 주근깨가 보일락말락 나 있는 두 볼, 어느 것
하나 귀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여색을 밝히는 가사의 눈에 원앙이 그냥 비쳐 지나갈 리가 만무하였다.

저렇게 싱싱하고 어여쁜 계집의 알몸을 형부인 자신이 안고 잔다고
하여도 회춘이 가능할 것 같았다.

원앙은 전신에 쏟아지는 형부인의 시선을 느끼며 당황해 하면서
물었다.

"마님, 무슨 심부름이라도 시킬 일이 있으신지요?"

"아니다. 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고 왔단다.

이리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들어보려무나"

형부인은 좌우의 사람들을 물러나게 한 후 원앙의 손을 끌어당겨
앉혔다.

원앙은 속으로 무슨 좋은 소식이 있단 말인가 하며 오히려 불안한
마음으로 형부인 곁에 다소곳이 앉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6일자).